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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율 May 28. 2022

허락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법

남의 말을 듣지 않을 거야. <랩 걸, 호프 자런>

서점에서 어른의 허락 없이 직접 사 본 ‘최초의 책’은 DNA와 유전자의 신비’라는 책이었다. 버스를 타고 서울의 대형서점에 가서 그 책을 샀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고, 그 책이 아직도 우리 집에 있다.

‘꿈돌이’ 목걸이를 건 채로 유치원에 다녔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바야흐로 ‘게놈’의 시대였다.


과학자 위인전과 어린이 과학책을 읽었다.

에디슨, 아인슈타인, 뉴턴, 노구치 히데요, 장영실, 그리고 어린 내가 알던 유일한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 (그때는 퀴리부인이라고 불렀지만.) 초등학교 때는 드라마 카이스트를 봤다.


초등학교 때는 경기도 과학영재에 뽑혀서 한동안 매주 수요일 교육청에 가서 과학실험 수업을 들었다. 수요일만을 손꼽으며 기다렸다.


인터넷을 잘할 수 있게 된 나이부터는 대학교 자연과학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과학카페에 질문들을 잔뜩 올렸다. 학교에서 식물 성장 조절 호르몬을 배운 날, 왜 식물 노화 방지 호르몬을 활용해서 노화 방지 화장품을 만들지 않느냐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질문을 올렸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은 친절하게도 동물과 식물의 생체 메커니즘은 매우 상이하며, 식물의 조절 인자가 동물에서도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 식의 사고를 계속해서 해보라고 답변해주셨어.... )

학교에 제출했던 장래희망은 어느 날은 작가, 선생님, 화가, 우주비행사, 의사로 매 번 달랐지만, 어느 나이부터는 그것이 무엇이든 과학과 관련된 일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과학이 좋았다.

생각하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런데,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돼가던 즈음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수학에 영 재능이 없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복되는 산수에서 자주 실수하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문제는 하나 더 있었는데, 갑자기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격려하던 어른들이 하나 둘  내 진로에 말을 보태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저 10대의 청소년이 이과를 가겠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 이후부터 아주 여러 소리를 들어야 했다.

우선 부모님은 문과에 가서 교대나 사범대에 가면 좋겠다고 했다. (어렸을 때 과학책을 사주고, 철마다 과학관이 데리고 다니던 것이 우리 부모님이었는데 불구하고.)

전화 통화로 가끔 ‘아니 우리 애는 여자애가 이과를 간다고 하네?’ (물론 그건 우리 엄마 특유의 약간의 거들먹거림이 포함된 자식 자랑일 것이다. 그렇지만 듣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더 나았을지 모른다.)라고 이야기하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의대를 갈 수 있다면 괜찮고, 여자가 하기엔 약사도 괜찮은거 같다는 격려를 받기는했다.....여튼 과학자는 뭔가 너랑 안어울린다고 했다.(대체 왜?..)


시험에서 잦은 실수를 하는 나를 보며 학원 선생님은 수학을 이렇게 못하는데 무슨 과학자냐고 했다.


그때 나는 겨우 16살 정도였고, 중학교 내내 반 일등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고,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수학을 결코 못하지 않았다. 그저 아주 특출 나게 탁월하지 않았을 뿐. 결정적으로 내가 무슨 수학을 통해 우주선을 쏘아 올리겠다거나 인류를 구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고 그저 이과를 가겠다고 알렸을 뿐이다.


물론 내 머릿속에도 ‘인류를 구하는 천재 과학 소녀’의 이미지만이 있었지만.

마리 퀴리는 너무 위대하고, 드라마 속 이공계 여성은 모두 천재였고, ‘알파걸’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다.  여자들은 학교 수학 시험같은데서 계산 실수 같은 것들을 하지 않겠지. 가끔 생각했다.


베타걸, 델타걸, 오메가걸인채 과학을 하는 여자는 그 시절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겨우 10대였고, 언젠가는 탁월해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괜찮았다. 




어찌 됐든 이과를 갔고, 대부분의 공부시간을 꾸역꾸역 수학에 투자해서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 학교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였다. 그때까지 내 인생은 어릴 적 장래희망을 이루게 되는 몇 안 되는 손쉬운 인생처럼 보였다. 본 전공은 환경이었지만, 굳이 같은 단과대의 생명공학을 함께 전공하며 자발적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퀴즈와 시험들에 파묻혔다. 


그래도  즐거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과학을 공부하고 있었으니까,

그건 무엇보다 내가 바라던 일이었으니까.


지만 본격적으로 ‘여러 소리들’을 듣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어릴 때와 달리,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분명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의학전문대학원을 가는 게 낫지 않겠니, 그럴 거면 이중전공 같은 건 힘드니까 안 하는 게 좋아’, ‘여자는 의사보단 약사지’, ‘여자 대학원생들은 왜 이렇게 안 꾸미지?’, '취업 걱정 너무 많이 하지마, 그래도 여자는 결혼이 있잖아.''현ㄷ에 못가면 현ㄷ남이랑 결혼하면 된다.'.


그러니까 그 조언들은 어떤 자격과 허락의 모습을 갖춘 채로, 미래에 대한 염려와 위로의 모습을 한 채로, 그러나 채 의식도 못할 정도로 일상의 모습을 띈 채 쏟아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매일 봐야 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제 1 전공, 우리 과에는 여자 정교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100명에 육박하는 교수진을 가진 두 번째 전공 교수진에만 여성 과학자 정교수가 아주 적은 비율로 있었다. 누가 봐도 대단한 학자임이 분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하나같이 수업이 아주 깐깐하다는 평이 있었지만, 그 교수님들의 수업을 꾸역꾸역 찾아 들으며, 그래도 저렇게 될 수도 있다는 희망 비슷한 것을 남몰래 가졌다.


하지만 그분들은 어쩐지 빈틈이 없었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너무나 완벽했고, 천재인 거 같았고,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은 것 같았고, 그래서 나와 너무나 멀어 보였다.(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그 시절 여성으로 정교수가 되었을 것이다.) 


여자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퍽하면 이런 소리를 듣는 것도 목격했다.

여자 대학원생들은 하나같이 너무 안 꾸며, 화장도 안 해, 여자 같지가 않아. 여자가 석사 박사를 하면 듀오 등급이 떨어진다. 마담뚜들은 명문대 여자들한테 연락을 돌리기 위해 매년 대학 졸업앨범을 확보하는데, 이공계 부분은 한꺼번에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넘긴다.. 안예뻐서.(아 유해하다.)


그런데 또 한쪽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여자 대학원생들은 실험실에 화장을 하고 온다. 힐을 신고 다닌다. 공부는 안 하고 너무 꾸민다. 기껏 공부를 하고 결혼해버린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힐을 신고 화장을 하고 거울을 하루 종일 쳐다봤고, 계절마다 화장품을 사모았고,

그런데 또 어느 날은 두꺼운 안경과 면바지에 무거운 백팩을 지고 추접스럽게 학교에 나와 선배들의 장난스러운 놀림을 받았다. 

어느 날은 하루종일 공부했고, 어느 날은 한껏 꾸미고 미팅을 하러 갔다.


나에게는 여러 욕망이 있었고, 이도 저도 속하고 싶었던 동시에, 이도 저도 속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흔히 말하는 과학천재소녀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보통 그런 여자들은 나처럼 이도 저도 아닌 경우가 없었다. 평범한 여자가 과학을 직업으로 삼는 경우도 그때의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어딘가에 있었을텐데).

부족한 롤모델을 상상력을 발휘해서 채우는데 많은 시간을 썼다. 남자 교수님들로 내 미래를 상상해보고, 어릴 때 읽었던 수많은 남성 과학자의 역경과 결핍을 떠올리려고 애쓰며, 과학을 직업으로 삼아 평범하게 살아가는 남성 직업인의 모습을 찾아보면서.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모든 상상이 너무 피로해서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의 어떤 모습을 지운 채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치환하는 연습, 그것이 가져오는 지나친 피로감.


그 지독한 피로는 도서관 구석에서 분자식을 외우다가도, 산책을 하다가도,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도, 참을 수 없이 무거운 모습으로 어깨에 얹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일종의 번아웃이었건거 같아.)

짐작은 했지만, 과학은 정말로 완벽하지 못한 사람을 배척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여성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완벽하지 못한데, 여성인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래도 나는 한때 위인전을 아주 열심히 읽었던 어린이였잖아. 평범한 사람이 ‘위대한 어떤 사람’ 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작은 꿈같은 건 마음속에 간직했다. 그래도 때가 되면 실험실에 들어가야지.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연구를 하고 과학을 하게 되면 여러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될 거라고, 나는 내 위치를 찾고, 그 위치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꾸역꾸역 앉아 미생물의 이름을 외웠다.


그러던 어느 날, 분자 생물학 3차 시험을 준비하느라 학교 버거킹에서 늦은 저녁을 때우던 날,  내 안에서 그 무거운 피로를 겨우 지탱하고 있던 어떤 실이 뚝 하고 끊겼다.


앞서 말한 한 명의 여성 교수님이 어린 딸과 함께 버거킹에 있었다. 그분의 자녀가 교복을 입고 가끔 학교에 찾아오는 모습을 가끔 보곤 했다.

그 교수님은 학부생이 보기에는 정말 말 그대로 너무나 완벽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초임교수에게 의무로 영어강의가 주어질 때였는데, 대부분 외국 유수의 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이공계 교수님도 자주 버벅거리며 강의를 했다. 그런데 그 교수님 만큼은 매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셨던 기억이 난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약력은 누가 일부로 지어내기도 힘들 만큼 완벽한 최고의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거 같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 교수님이 아이와 버거킹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교수님의 사생활을 엿 본거 같은 느낌이 들어, 그쪽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 조용히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먹던 남자 선배가 말했다.

‘저 봐, 엄마가 아무리 잘 나가면 뭐하냐 애는 맨날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는데.’

그 순간 마음속에서 어떤 것이 탁하고 끊겼다. 아 정말 피로했다. 일생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동시에 내가 거대한 착각 속에서 인생을 낭비해왔음을 깨달았다.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여러 소리는 평생을 들어야 하는 것이구나. 완벽이나 노력 같은 것과는 관계가 없구나.



나는 대학원에 가지 않았다.

기계처럼 원서를 넣고 남들처럼 취업준비를 했다. 이공계 전공자는 취업이 잘된다고 모두가 그랬는데, 그 말을 해준 사람이 모두 남자 선배였음을 깨달았다. 직무나 적성따윈 안중에도 없이 여기저기 원서를 쓰고  게중에 나를 뽑아준 어떤 곳에 가게 되었다. 그래도 전공을 살려 대기업 엔지니어로 취업하는데 성공했는데.....인사팀은 나를 마케팅에 배치했다.


어쩌겠어 뭐. 마케팅이 여자가 하기 더 좋은 직무라고 다들 축하해줬다.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는 진로였지만, 뭐 사람들 말이 맞겠지.

야망이나 꿈 같은 피곤하고 허황된 단어 같은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완전히 지쳤다.  


나는 카이스트 드라마에 이나영이 연기한, 그리고 얼마 없는 이공계 단과대학 여자 교수님들의 이미지처럼 천재소녀도 아니었고, 마리 퀴리 같은 위인들처럼 제 몸을 깎아먹으면서 버티는 열정도 없었으며, 그냥 그런 여자애일 뿐이었다. 그냥 그런 여자애가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과학으로 먹고사는 일도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본 콘텐츠에서는, 세상이 내게 보여준 모습은 모두 그랬다.


나처럼 엉망진창인 사람, 여러 욕망을 품고 있는 어지러운 여자애가 과학자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그저 이제는 적당히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먹을 것을 사고, 좋아하는 책을 사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떤 을 원한다는 이유로 여러 소리를 듣지 않는 삶, 억지스러운 자기 독려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삶. 거기에 행복과 안식이 있을것만 같았다.


그 삶으로 걸어 들어갔다.

과학 같은건 잊었다.


마케팅은 정말이지 적성에 너무나 안맞았다. 원하지 않았던 직무는 내 자존감을 박살냈지만, 그 마저도 적응했다. 뭐 어때 다들 이렇게 어른의 삶을 사는거지. 다 돈 벌려고 하는거지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회사를 몇 년쯤 다녔을 때였을까.


금요일 저녁 늘 들리곤 했던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랩과 걸이 나란히 붙어있는 책.

걸에는 내가 알던 ‘랩걸'들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엉망진창인 여자, 천재가 아닌 여자,

우울한 여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을 하는 여자가 있었다.

사람들이 꼭 한 마디씩 보태던, 과학을 하느라 제대로 일상을 챙기지 못하는 여자가 나왔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한다.

그 여자는. 그런 여자 이야기가 그 책에 있었다. 내가 일평생 찾아 헤매던 여자의 이야기.


책을 읽으며 울었다.

그 여자는 어떻게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일까?

호프 자런은 책에서 말한다. 

‘남의 말을 듣는 데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을 잘한다.’ 고.


P.396-370
나는 남의 말을 듣는 데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을 잘한다. 나는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고, 단순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일을 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해낸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여자이기 대문에 내가 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영생을 얻을 것라는 말을 들었고,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일찍 죽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너무 여성적이라는 꾸지람을 들었는가 하면 너무 남성적이어서 못 믿겠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너무 예민하다는 경고를 받은 적도 있고, 비정하고 무감각하다는 비난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모두 나만큼이나 현재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래를 보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내가 여성 과학자이기 때문에 누구도 도대체 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따라서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내가 무엇인지를 만들어나가면 되는 값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동료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나도 그들에게 충고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음 두 문장을 되뇐다. “이 일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할 때를 빼고.

아 지구 반대편의, 나보다 한 세대 위의, 심지어 이렇게 멋진 학자가 된 여자가 있었다니. 그런데 그 사람이 나랑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었다니.

세상이 쏟아내는 이중 메세지 속에서도, 그저 자신이 선택한 길을 계속해서 걸어간 사람이 있었다.


'아, 그런데 난  타인의 말을 너무 잘 들으며 인생을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그때 알았다. 

지독한 피로감의 정체도 무엇인지 알 거 같았다. 타인의 틀려먹은 생각대로 내 삶을 꾸려나가는데서 오는 피로감. 그리고 그 피로는 다른 곳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점점 불어가고 있음도.


여러 소리들을  듣지 않으려고 취업을 했는데, 그런데 취업을 준비하며, 그리고 취업을 한 뒤에도 또 다른 너무 많은 여러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아, 내가 너무 순진했다…. 여기서 그 이야기들은 하지 않겠다. 너무 길다. )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을 품는데 어떤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니구나.

하고자 하는 것, 그 마음을 지속 하는 것이 자격이구나.

자격은 다름아닌 내가 나에게 주는 것이구나.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천재만 과학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리고 내가 가진 수많은 결핍과 피로함이 전부 나의 탓은 아니라고.  

내가 여행을 두려워하고, 타지에서 근무하는 것을 꺼리고 무서워하고, 모험의 길 앞에서 쉽게 포기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겁이 많은 것이 정말로 나 혼자만의 문제인 것이냐고, 그것이 정말 원래의 내 것이냐고, 전부 나의 탓인 거냐고.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들어야만 했던 소리와, 어떤 모습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약간의 용기를 내서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실패해보라고도 말하고 싶다.

그렇게 까지 안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로 싫어질 때까지,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 곳이 아니고, 내가 정말로 싫어하지 않는 곳에 있기 위해서.

자격을 얻기 위해 탁월함을 증명해야 하는 곳이 아니고, 의지와 소망 자체가 자격이 되는 자리를 찾아가라고.


일 평생을 자기 독려를 하는데 에너지를 쓰며 살았다. 여러 소리들 속에서 기죽지 않으려고. 그러다가 조그만 말 한마디에 파스슥 마음 한 부분이 깨지고, 그렇게 계속해서 아무것도 되지 않는 길을 선택해왔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여전히 자기 독려
(그러니까 정신승리....)를 해볼 수 있겠지.


지금의 나에게는 이렇게 ‘독려’ 해주고 싶다.

앞서 말한 '과거의 ' 에'지금의 '가 해주고 싶은 말, 그건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나' 가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고.

엉망진창인 채로 하고 싶은 것을 하던 앞서 살아간 여자들이 해주는 말이기도 하고.


그 말을 믿어보라고, 이제 그 말들을 들어보라고.


호프자런은 말한다.

누구나 되고 싶은 것이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어쩌면 늦은 것이 아니고,

이 모든 시간이 내게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과 같은 마음을 가지기까지 이 모든 시간이 정말로 필요했어. 이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P. 380
잠시 후에 아이는 눈을 감고 물었다. “저 이제 호랑이로 변신했어요?”
나는 아이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본 다음 말했다.
“아니.”
“왜 아직 아니죠?”
“오래 걸리기 때문이지.”
“왜 오래 걸려요?”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
“왜냐고? 엄마도 몰라.” 나는 그렇게 인정한 다음 덧붙였다.
“자기가 원래 되어야 하는 것이 되는 데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단다.”


<참고 : 랩걸 , 호프 자런 지음/알마 , 인용 내용은 페이지 표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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