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율 Aug 13. 2022

내일을 위한 사랑의 주문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리사 팰드먼 배럿> 을 읽고

MBTI의 시대다. 사람들은 성격 테스트를 좋아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유형의 성격유형 테스트에는 안락이 있다. 타고난 기질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하여 지금의 내가 일정 부분 설명되는 것, 어떤 그룹에 속하고, 규정되어 그대로 인정받는 것, 이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내가 가진 단점과 모순이 원래 어쩔  없는 것이라면, 이미 그렇게 정해져버린 것이라면, 마음이...... 한결 낫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이 그 유형만큼 있다는 인정은 너무 포근해서 그대로 누워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게 얼마나 안도되고 좋은 것인지는, 사람들이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어디까지 하는지 관찰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오은영 선생님이 나오는 모든 프로그램을 탐욕스럽게 찾아본다. 어린이와 어른의 모든 기이한 면은 양육자, 유년 환경, 그리고 기질로부터 온다. 그것으로 어느 정도 설명되어진다. 우리 모두가 그럴만하기 때문에 지금에 이른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일정 부분의 추함, 모남 같은 것을 그대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나는 유년의 엄중함에 대해서 생각하고, ‘어린이와 동물에게 한 폭력은 세계의 각인이라서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는 박연준 시인의 말도 떠올린다.


유전자, 그리고 유년시절 우리가 받았던 양육, 환경, 이 모든 것은 틀림없이 무겁고 중요하다.  우리의 주인인 뇌는, 그런 것들에 의해서 생겨나고 배선되기 때문이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이라는, ‘뜻밖의’라는 단어가 포함된 이 책 조차도 어린 시절 환경이 뇌의 배선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중대한지 빼먹지 않고 얘기한다.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배선되고, 결코 나의 의지가 아니었던 궤적에 사로잡힌다.


P.122 

당신이 어렸을 때 뇌가 배선되는 환경을 보살핀 건 양육자였다. 양육자가 당신의 적소를 만들었지 당신이 그 적소를 선택한 게 아니다. 당신은 아기였으니까. 그러니 초기 배선은 당신 책임이 아니다. 당신은 아기였으니까. 그러니 초기 배선은 당신 책임이 아니다. 당신이 서로 매우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다고 해보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같은 종류의 옷을 입고 특정 신념에 동의하거나 종교가 같거나 피부색이나 체형이 비슷비슷한 사람들 주변에서 자랐다면, 이런 유사점들이 당신의 뇌가 ‘사람들이란 이러저러하다’고 예측하도록 세부 조정하고 가지치기해왔을 것이다. 발달하는 뇌에는 일종의 궤적 같은 것이 주어진다.


뇌의 초기 배선은 일정 부분 가지고 태어나고,

또 성장 과정에서 연결되고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란 그 뇌를 가지고 어른이 된 우리는 같은 식으로 실수하고, 같은 식으로 절망을 대하고, 같은 식으로 같은 종류의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우리들은 자신을 저주하면서도, 오로지 자신만을 산다. 모두가 기질과 유년의 자장 아래에서 평생을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이것을 완벽하게 받아들였고, 내 기질과 원가족의 환경에 대해 이해하는 것만이 나의 운명을 미리 아는 길 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이 순간도 일정 부분은 그러하다.)  


그리하여 때로는 성격 테스트와 여러 양육 서적의 말들이 신탁처럼 다가왔다. 어쩌면 오늘날의 샤먼 역할은 유전자 검사, MBTI가 하는 것은 아닐까?


너는 이렇게 태어났고, 이렇게 자랐기 때문에, 이렇게 넘어지게 된단다, 그러나 이렇게 나아갈 수 있겠지. 그걸 받아들이렴.’


그런데 모든 ‘신탁’ 이 그러하듯 이 모든 것들에 반항심이 생겼다. 심지어 아주 갑갑한 저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정말로...... 유전자, 양육, 유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한 번 배선된 뇌의 회로를 바꾸지 못하고, 항상 어떤 스트레스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고, 그것이 원래 나인 것이라며 인정한 채 살아가야 할까?

동일하게 성공하고 역시나 동일하게 실패해야 할까?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이번에도 나는 귀신같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의 저자인 ‘리사 펠드먼 배럿’ 은 뇌에 대한 가장 오래된 고정관념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 그러니까 뇌는.... 바꿀 수가 있는 것인데, 그것을 인간의 의지, 극복 같은 것을 들이 밀어 설명하지 않는다. 그녀는 뇌과학자고, 뇌에 대해 이해한 바를 친절히 설명해준다.

뇌는 유연한 것이며, 그것은 과학이고, 뇌는 새로운 자극과 반응하며 새로운 연결을 획득할 수 있는데, 그 자극을 선택하는 것 또한 우리 자신이라고.


p. 67

공항이 터미널을 짓거나 개조하는 것처럼 우리 뇌는 끊임없이 공사 중이다. 뇌의 어떤 부분들에서는 신경세포가 죽고 태어난다. 연결은 수없이 많아지며, 신경세포들이 함께 발화할 때에는 더 강해지고 그러지 않으면 연결은 약화된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가소성 plasticity’의 한 예로, 우리가 살아있는 한평생에 걸쳐 일어난다. 새로운 친구의 이름이나 뉴스에서 나온 흥미로운 사실 등 당신이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이 경험이 배선에 부호화 encoding 되면서 당신이 기억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호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면 배선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초기 배선이나 양육, 유전자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가장 엄중한 요인이다.) 중요성은 인정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뇌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우리 자신이고, 그것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사람도 자신밖에 없기에, 존재를 얼싸안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하고도 최선의 선택지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언제나 미완성의 존재들이기 때문에, 언제나 다른 식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언제나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고 말해왔다.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런데 그 자유가 어떤 궤적으로부터의 자유, 규정으로서의 자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측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심지어 나 자신의 뇌가 예측하는 것에서까지. 새로운 문화, 새로운 언어, 책, 문화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며, 그러기에 나는 나 자신에게 기대를 가진 사람이 된다. 아직도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어떤 배선을 구축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는 채로 남아있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 안에 나를 집어넣을 수 있는 나, 비로소 미래를 기대하는 내가 된다.


P. 123

어른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당신은 어떤 유형의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으며, 어린 시절에 자신을 둘러쌌던 믿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자신만의 적소를 바꿀 수도 있다. 오늘의 행동은 내일 뇌가 내놓을 예측이 되며, 그 예측들은 자동으로 당신이 앞으로 할 행동을 이끌어낸다. 따라서 당신에게는 새로운 방향으로 예측하는 뇌를 길러낼 자유가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당신이 져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두가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구에게도 어느 정도 선택의 여지는 있다.
예측하는 뇌를 가진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과 경험들을 더 많이 제어할 수 있고 더 많은 책임을 갖는다. 이러한 책임을 기꺼이 감수할 마음이 있다면, 그 가능성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라. 당신의 삶은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까?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한동안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에 빠냈는데, 언제나 유미를 위해서 유미 자신보다 최선을 다하는 세포들을 보며 몸에 대한 애틋함이  솟아났다. 가만히 있어도 나를 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뇌와 신경, 그리고 기관들을 생각하면 역시나 눈물겹다.


그런데 여기에서 굳이 내가 추가적인 의지와 노력을 가지고 나를 새로운 환경과 정보에, 좋은 자극과 여러 감정에 노출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굳이 생각하면 피로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이것은 안락하지 않다. 수고롭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인데. 내가 책임져야 할 삶은 사실 나 하나의 삶뿐인 것인데. 자포자기의 태도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반대로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채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몸과 잘 싸우지 않는다.)


p.116-117

당신의 뇌가 정확하게 예측했다면 그 뇌는 당신의 현실을 만든다. 예측이 틀렸을 때도 뇌는 마찬가지로 현실을 만들어내며, 바라건대 그 실수를 통해 배운다. (중략) 그렇다. 뇌는 당신이 인식하기 ‘전에’ 행동들을 개시하도록 배선되어 있다.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선택을 통해 많은 것을 하지 않는가? 최소한  그렇게 보인다. 예를 들어 당신은 이 책을 열어서 글자들을 읽기로 선택했다. 하지만 뇌는 에측기관이다. 뇌는 당신의 과거 경험과 현재 상황을 기반으로 다음에 이루어질 일련의 행동을 계획하며, 이러한 일들은 당신의 인식 없이 이루어진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행동은 당신의 기억과 환경의 제어를 받는다. 이것이 당신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까? 누가 당신의 행동을 책임져야 할까?

그것이 책임지는 삶이니까. 그것이 전 세대의 좌우명이 ‘Love yourself’인 이 시대에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랑의 길이니까. 사람들이 죄다 자신을 사랑하라던데, 당최 어떻게 하는것인지에 대한 답은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노력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가령 이런 질문들.

태어난 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삶을 사랑하고 책임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뇌과학책을 읽은 오늘의 나는 이런 대답을 이야기할 수 있다.  

뇌의 뜻대로 하되, 뇌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내게 보낼 수 있는 가장 지극한 사랑 고백이라고.  그건 이것과 같은말이니까.


세상이 거지 같아도 그곳에 너를 그저 이렇게 방치하지 않을게, 너를 구할게. 너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갈게’


오늘은 이보 더한 사랑 고백을 알지 못한다.

그건 그 사람에게 미래를 선물한다는 말이니까.


그리하여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도전하고, 연결되지 않은 일에 기꺼이 도전하고,

안락하지만 고통스러운 환경과 사람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가보지 못한 나라와,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찾아가라고.


내가 나의 새로운 양육자로 나서서, 새로운 것을 가르치고,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 해롭고 폭력적인 세계에서 구해내고, 보다 다정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친구를 맺어주라고.


그리하여 갖게 될 새로운 뇌를 믿어보라고.

주문처럼 되뇌어 보는 수밖에.


이건 그러니까,

언제나 한 발짝 나아가려면 백 번 정도 마음 깊이 용기의 말을 외쳐야 하도록 만들어진 나, 다름 아닌 그런 나에게 내 뇌가 해주는 말이다.



<참고 -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리사 팰드먼 배럿, 더퀘스트, 인용 부분은 페이지 표시 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허락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