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리사 팰드먼 배럿> 을 읽고
당신이 어렸을 때 뇌가 배선되는 환경을 보살핀 건 양육자였다. 양육자가 당신의 적소를 만들었지 당신이 그 적소를 선택한 게 아니다. 당신은 아기였으니까. 그러니 초기 배선은 당신 책임이 아니다. 당신은 아기였으니까. 그러니 초기 배선은 당신 책임이 아니다. 당신이 서로 매우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다고 해보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같은 종류의 옷을 입고 특정 신념에 동의하거나 종교가 같거나 피부색이나 체형이 비슷비슷한 사람들 주변에서 자랐다면, 이런 유사점들이 당신의 뇌가 ‘사람들이란 이러저러하다’고 예측하도록 세부 조정하고 가지치기해왔을 것이다. 발달하는 뇌에는 일종의 궤적 같은 것이 주어진다.
공항이 터미널을 짓거나 개조하는 것처럼 우리 뇌는 끊임없이 공사 중이다. 뇌의 어떤 부분들에서는 신경세포가 죽고 태어난다. 연결은 수없이 많아지며, 신경세포들이 함께 발화할 때에는 더 강해지고 그러지 않으면 연결은 약화된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가소성 plasticity’의 한 예로, 우리가 살아있는 한평생에 걸쳐 일어난다. 새로운 친구의 이름이나 뉴스에서 나온 흥미로운 사실 등 당신이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이 경험이 배선에 부호화 encoding 되면서 당신이 기억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호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면 배선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어른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당신은 어떤 유형의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으며, 어린 시절에 자신을 둘러쌌던 믿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자신만의 적소를 바꿀 수도 있다. 오늘의 행동은 내일 뇌가 내놓을 예측이 되며, 그 예측들은 자동으로 당신이 앞으로 할 행동을 이끌어낸다. 따라서 당신에게는 새로운 방향으로 예측하는 뇌를 길러낼 자유가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당신이 져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두가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구에게도 어느 정도 선택의 여지는 있다.
예측하는 뇌를 가진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과 경험들을 더 많이 제어할 수 있고 더 많은 책임을 갖는다. 이러한 책임을 기꺼이 감수할 마음이 있다면, 그 가능성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라. 당신의 삶은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까?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당신의 뇌가 정확하게 예측했다면 그 뇌는 당신의 현실을 만든다. 예측이 틀렸을 때도 뇌는 마찬가지로 현실을 만들어내며, 바라건대 그 실수를 통해 배운다. (중략) 그렇다. 뇌는 당신이 인식하기 ‘전에’ 행동들을 개시하도록 배선되어 있다.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선택을 통해 많은 것을 하지 않는가? 최소한 그렇게 보인다. 예를 들어 당신은 이 책을 열어서 글자들을 읽기로 선택했다. 하지만 뇌는 에측기관이다. 뇌는 당신의 과거 경험과 현재 상황을 기반으로 다음에 이루어질 일련의 행동을 계획하며, 이러한 일들은 당신의 인식 없이 이루어진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행동은 당신의 기억과 환경의 제어를 받는다. 이것이 당신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까? 누가 당신의 행동을 책임져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