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율 Feb 21. 2022

내 마음대로 읽는 과학책

과학책을 읽으며 시절을 건넜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과학책을 읽었다. 서점에서 스스로 처음 구매했던 책도 과학책이었다.

한 시절 과학자를 꿈꿨었고,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하였으나, 전혀 관련 없는 분야에서 몇 년간 입고 마실 수 있는, 좋아하는 책을 살 돈을 벌었다. 내 삶과 과학은 아주 무관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계속해서 읽었다. 삶에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회사원으로 사는 동안, 혹은 회사원으로 살지 않는 동안 세상에는 너무 많은 목소리들이 있었다.

과도하게 뜨겁고 혼탁한 갈등과 논쟁이 있었고, 지나치게 세분화된 문제들이 있었다.

자주 피곤했고, 가끔은 상처받았는데, 그럴 때마다 과학책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위로는 차고 맑았다.




어떤 갈등은, 어떤 문제는 때로 과학을 알면 매우 심플해진다.

인간이 상상으로 그어놓은 선들은 과학의 눈으로 보면 원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게 되면 타인, 그리고 나와 화해하기가 보다 쉬워진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걸어 나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어떤 과학은 우리가 몰랐던 아름다움을 감각할 수 있게 해 준다.

사실 존재하는 어떤 것들은 과학의 눈으로 보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 그러라고 현상이,존재가,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뭇잎은 우리에게 유의미한 교훈을 주려고 날이 추워지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삶을 알려주려고 바다에 파도가 치는 것도 아니며, 통신과 이동을 위해 자기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들의 운동을 알아채고, 변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사람은 그것으로 무언가를 해낼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비행기를 만들고, 치료약을 개발할 것이다.

인간이 원래 그렇다. 그런 인간들은 과학자가 된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나는, 자신에게만 의미 있을 아름다움을 깨닫고, 위로받고,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어떤 인간들은 노을을 보며 울고 웃는다. 그것이 빛의 산란일뿐일지라도, 분명 아름답기 때문이다.

인간이 원래 그렇다. 그럴 때 우리는 그냥 우리 자신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꽤나 괜찮은 일이다. 무료한 일상은 다채로워진다. 인간으로 사는 것이 조금은 더 견딜만해진다.




그리하여 과학책을 자기 계발서로 읽었으며, 힐링 에세이로 읽고, 사회과학서처럼 읽었으며, 철학서로, 종교서로 읽었다.


어쩌면 과학책을 오용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텍스트를 오용하고 남용하며 오로지 내 삶의 레퍼런스로만 삼던 기질이 내가 과학자로 살 수 없었던 이유일지도 모르며.

 

하지만 분명한 건 읽고 얻은 것으로 시절을 건넜다는 점이다. 조금 덜 울고, 혹은 더 울고, 조금 덜 투덜대며, 보다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세상에 나설 수 있었어.  조금은 현명해진 눈으로, 더 씩씩한 마음으로.


나무도 파도도, 과학자도 나의 오용을 용서해 줄 것이다.


그저 내 마음대로 읽었던 과학책들에 대해서 언젠가는 꼭 한 번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글 역시 온전히 나를 위해 쓴 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일을 위한 사랑의 주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