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또 그랬다.
친구가 뉴스에서 최연소 여자 임원으로 명망이 높았던 사람이 갑질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기사를 전해주었다.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고 여성으로서 대기업 임원 되기가 힘들단 걸 알기에 한편으로는 그분이 잘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또 인성 문제로 물러나 버리고 만 것이다. 허무했다.
2019년 7월, 직장 내 갑질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이것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으로 근로기준법의 한 켠에 자리했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공지가 뜨고 슬슬 교육과정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국가는 법은 만들었지만 약자에게 유능한 변호사는 붙여줄 수 없었기에 약자들은 회사에서 또 노동부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회사는 돈을 버는 목적으로 생긴 곳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건가.' 하고 나는 무기력한 한숨을 쉬었다.
권선징악이 아직 판타지인 이 사회에서 그나마 법 제정을 통해 이런 이슈가 환기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번처럼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갑질 문제가 불거지면 회사에서 모종의 대응을 하는 케이스도 종종 생긴다. 자의건 타의건 약자에 대한 회사의 공식 입장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인성이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이유로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면, 그건 인성이 높은 자리의 한 다리쯤 된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친절하면 바보가 된다고 우리 선배들은 나에게 가르쳤다. 만만하게 보이지 말라고. 사실 이 가르침은 아직 유효하다. 그렇지만 이제 세상은 말한다. 만만한 사람에게 만만하다고 함부로 대했다간 다칠 수도 있다고. 이게 조금이나마 을들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