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함으로서 설 수 있는 나
주말에 Maid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봤다. 한국 제목으로는 '조용한 희망'이다.
이 드라마는 미국 빈곤층 싱글맘의 실제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좀 많이 봤다 싶었는데 새벽 3시가 지나고 있었으니까.
카메라 앵글이 유독 이 주인공의 눈빛을 잡는다. 알코올 중독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남자 친구를 피해 아이와 함께 도망쳐 나온 주인공 알렉스는 냉혹한 현실에서 당황한다. 맞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폭력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그렇지 않으면 도움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에서 텅 빈 그녀의 눈동자는 슬프게 빛난다.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미국 빈곤층의 삶을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집이 없는 노숙자들, 차나 트레일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보장 프로그램에 가입하기 위해 수십 통의 서류를 떼어야 하고 그 자격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현실, 알코올 중독, 마약, 정신질환, 가정폭력 등등.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가난은 대물림되기가 아주 쉬운, 사실은 거의 대물림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스에겐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신만이 지킬 수 있는 딸이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할 수 있고 또 해내야 하는 가정부 일을 시작한다. 거기서 부유한 사람도, 가식적인 사람도, 따뜻한 사람도, 겉과 속이 다른 사람도 온갖 가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하면서 놓았던 펜을 다시 잡는다.
일은 생계 수단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태했던 내 마음을 주인공이 눈빛으로 한 대 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딸을 더 좋은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너는 왜 이렇게 징징거리고 있는 거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에피소드에 그녀를 고용한 레지나라는 집주인이 알렉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무슨 일이 있던 일을 놓으면 안 된다고,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말이다. 정말로 알렉스의 삶에서 보면 일만큼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게 없다고 말이다.
내가 자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 다른 사람과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있게끔 해주는 일. 그게 일이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이만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는 것도 얼마나 소중한 일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