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준비하는 행복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지

by 서이담
211019.jpg 그림: 서이담
내가 스스로 할 거야!


요즘 부쩍 아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위쪽 찬장에 있는 물컵이라도 꺼내 주려고 하면 이 말을 외치고는 울상을 짓는다. 그럼 나는 다시 컵을 찬장에 두고 아이가 의자에 올라가 컵을 꺼내고, 다시 의자를 조심조심 내려와 정수기 앞에 가서는 물컵을 정수기 아래에 조심해 두고 정수기 버튼을 누르고 다시 한번 누를 때까지 기다린다. 지금 이 시기 아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이 형성되는 시기라고 하니 나는 아마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더욱 기다려주어야 할 것이다.


아니 아이가 자립하도록 기다리는 것이 곧 부모의 일일지도.




길었던 휴가가 끝나간다. 휴가가 아쉽지 않도록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해보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찾아간 동네 책방, 거기서 사진작가 김영갑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휴먼앤북스, 김영갑)"를 만났다.


폐교를 고쳐 만든 작은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던 그의 오름과 바람을 담은 사진들을 보고, 여느 풍경사진과는 다른 압도감에 큰 인상을 받았다. 책을 찬찬히 살펴보니 왜 그의 작품이 그렇게 특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제주도민들, 특히 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 땅의 아픔과 실체를 마음속 깊이 느끼고 그 마음을 담아 작업한 결과물이어서였다. 가족도 뚜렷한 재산도 마다하고 그가 하고자 하는 예술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보고는 안쓰럽기도 경외롭기도 했다.


책의 몇 구절은 인상이 깊었는데 특히 이 부분이 좋았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을 찾아 해외로 나간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경치가 빼어난 곳을 찾아가면 좋은 사진을 찍게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어떤 바다나 강에도 큰 고기는 있기 마련이다. 운이 좋아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운은 사진가 스스로 준비해서 맞이하는 것이다.
- 그 섬에 내가 있었네(휴먼앤북스, 김영갑)


그는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


인생 어디에도 행복은 있다.
다만 내가 준비하지 않아서 맞이하지 못할 뿐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작가가 꼭 나에게 '행복은 어디에도 있다고. 다만 그걸 준비하고 맞이하는 자에게 보일 뿐이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행복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나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였다.


어느덧 꽤 오랜 시간 동안 직장생활을 해 왔다. 중간에 그만둘 뻔한 일들도 종종 있었고, 일 자체가 지겨워지기도 했다. 일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보다는 매일의 업무와 인간관계에 지쳐 짜증이 정말 많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런 타이밍에 이 책의 이 구절을 만나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긴, 마음속 깊이 먼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 구절이 이런 의미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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