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글쓰기

듣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by 서이담
211207.jpg 그림: 서이담

생각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조금 피곤한 일이다.


20대 때에는 일부러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에 들어가서 버텨보기도 하고, 모든 사람과 잘 어울려 지내는 내 자신을 꿈꿨다. 그런데 가정이 생기고 내 바운더리가 확실해지면서 더는 이런 부분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말 섞기 어려운 사람과는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어느 날 거리두기를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살짝 불편한 사람과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자기주장이 꽤나 센 사람이어서 내 이야기를 할 때 이야기를 듣고 답하는 게 아니라 약간 튕겨나가는 느낌이 많이 들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날은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냥 호응만 하자. 내 의견을 말하지 말아 보자.'


그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꽤나 열심히 들었다. 마음을 이렇게 먹으니 이야기를 듣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뜻이 맞지 않아 그 사람과 대화가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을 열고 들으니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의견이 내 생각을 뛰어넘는 부분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발상 자체가 다르기도 하고, 이야기의 소재가 나랑 많이 다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내 마음속에 여러 가지 글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내 휴대폰 메모장에 글감이 두어개 쌓였다.


깨달았다. 듣는 것에서부터 글쓰기가 시작된다는 걸. 마음을 열고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와 내 주변 환경에 세심하고 주의깊게 귀를 대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목소리를 내기만 해서는 제대로 쓰기 어렵다.


작가라면 조금 노력해서 이런 시간을 가질 필요도 있겠다 싶다. 물론 매일은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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