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장

글도 묵어야 깊어진다

by 서이담
211101.jpg 그림: 서이담


요즘 계속 글감이 생각나면 그때그때 제목과 간단한 내용을 저장해둔다. 그리고 글을 쓰는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글감을 쭉 훑었다가 다시 고쳐 쓰고 플랫폼에 올린다. 꽤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그 진가를 알게 된 건 역설적이게도 그 반대로 했을 때였다.


며칠 전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아이가 작은 사고를 쳐서 스트레스가 터져버린 그때 나는 화풀이하듯 글을 써 올렸다. 글을 쓸 때는 아주 후련하게 키보드를 두드린 것 같았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후회가 몰려왔다. 감정적으로 그것도 부정적 감정으로 글을 써 버렸구나. 이 글은 다시 되돌릴 수도 없는데 말이다.


글감을 저장해 두고 다시 쓰는 그 시간 동안 내 감정도 깊어지고 생각도 넓어지기 때문일까. 시간을 들여 쓴 글은 맛이 깊다. 반면에 순간에 차오른 감정으로 쓴 글은 간이 덜 배인 겉절이처럼 떨떠름하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욕심 같아서는 내 글이 언제나 잘 준비되어서 맛깔나게 읽혔으면 좋겠다.


김장 시즌이 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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