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함이 몇 배로
주변 또래들에 비해 결혼도 빨리, 출산도 빨리, 육아도 빨리 경험한 편이라 육아 동지들이 생기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다. 1~2년 사이에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 친구들이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한 뒤에 복직하곤 했는데 남 일이 아닌 것 같아서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고 그랬다.
어느 날은 친구 하나가 말했다. 본인은 육아가 정말 행복했다고. 신기했다. 물론 나도 행복한 적이 많았지만 힘들다고 더 많이 느꼈었으니까. 덧붙여서 자기는 꼭 둘째 아이를 가질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고 그 친구의 아이가 엄청나게 순한 아이는 아니었다. 본인 입으로 까다로운 아이 때문에 이런저런 고충이 있다고 말하는 그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 보였다.
신기했다. 동시에 그렇게 마음먹지 못하는 나 자신이 조금 이상하고 조금은 못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객관적으로 보아서는 내 아이가 좀 더 순하고 소위 말해 키우기 훨씬 편한 아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혹시 그 친구들은 아이가 좀 더 힘들게 찾아왔다거나, 아이를 좀 더 소중하게 여길 계기가 있지 않았겠냐고 말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몇 개월 후 그 친구를 만났을 때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나 혹시 아이를 낳기 전에 고생을 하거나 힘든 일이 있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는 지금의 아이를 낳기 전 뱃속의 아이를 한 번 잃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누구도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내게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던 것인데 이렇게 대답을 들으니 약간 미안하고 먹먹해졌다.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이라지만 소중함만은 상실감과 비례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친구는 상실을 미리 맛보았기 때문에 찾아온 아이가 배로 소중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맷집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좀 더 강하고 뚝심 있게 이를 헤쳐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