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음의 미학

낮아야 고르게 된다

by 서이담

언젠가부터 낡은 집들이 좋다. 카페도 낡은 공간을 개조한 카페들이 멋스럽게 느껴지고, 그곳에 가서 시간을 보내면 꼭 그 오래된 시간만큼 많은 날들을 산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든다. 길을 가다가 낡은 집들을 발견하면 용기를 내어 한 바퀴 빙 둘러보곤 하는데,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멋짐이다.


하루는 일이 있어 처음 갔던 동네에서 낡은 아파트를 만났다. 아파트 아래에 있던 상가에 이어져서 시장이 들어선 아주 역사가 오래된 곳 같았다. 시장에 들어가 직접 무친 삼색 나물도 사고, 볶은 땅콩도 한 봉지 샀다. 그리고 아이가 김밥을 말고 있는 사장님을 보면서 한 줄 사고 싶다고 하길래 기분이다 하고 한 줄을 사 주었다. 시장에서 값싸게 부자가 된 기분을 느끼며 나오다가 다시 그 오래된 아파트를 봤다. 한 3~4층 정도 되어 보였을까? 아파트엔 한가득 햇빛이 들어왔다. 1,2,3,4층 모두 한가득 들어왔다.


아 여기는 햇빛이 고루 비치는구나.


우리 집은 5층이다. 하지만 집에 온전히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은 채 3시간을 넘지 않는다. 그마저도 집의 반 정도만 들어온다. 아파트가 10층이 넘고, 동과 동 사이 간격이 넓지 않으니 이웃집이 햇빛 가리개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는 셈이다. 나는 내가 높은 층에 살아야만 햇빛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아파트를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낮아지면 고루 햇빛을 누릴 수 있는 거였다. 우리 모두 좁은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느라 키재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낮아져야 고루 누릴 수 있다. 낡고 정감 있는 아파트에게서 오늘 한 수 배운다.



매거진의 이전글첫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