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은 쓰리지만 얼른 잊자
멍청비용
: 실수나 어리석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사고를 매우는 비용.
네이버 오픈사전에 보면 멍청비용을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두었다. 그래. 멍청비용. 어제도 나는 내가 멍청비용을 이틀 전에 지불했다는 것을 알고 이불킥을 했다.
이번 주말은 유난히 바빴다. 원래는 13일에 회사 동료의 결혼식을 갔다가 그날 저녁에 시부모님 생신 저녁을 우리 집에서 하고, 14일에는 친구들 몇 명과 당일치기로 부산 여행을 가기로 했다. 15일에는 또 일산에 있는 남편 친구네 부부와 부부동반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었고. 그런데 13일에 사촌 오빠네 부부한테서 이런 연락을 받았다.
"내일은 뭐하시나?"
"앗. 내일은 부산으로 여행을 갑니다."
"흠흠 그렇군. 그럼 다음번에 보자구!"
지난번 모임을 했을 때 집에 한 번 찾아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게 생각이 나셨는지 급 초대를 해오셨다. 그런데 얼마 후 14일 부산 여행을 함께 가기로 했던 친구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근데... 내일 여행 나는 못할 것 같아. 코로나 걸린 후로 격리도 하고 격리 해제도 되었는데 몸이 좀 좋지 않네."
"에고.. 그렇구나. 그럼 우리 다음 주에 보지 뭐."
이렇게 14일 약속이 취소되고는 나는 바로 사촌오빠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부산여행이 취소되었다고, 그래서 집에 놀러 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바로 부산에 가려고 끊어 놓은 열차표를 취소하는 행위 말이다.
"으악!!!!"
어제 자기 전 미뤄진 여행을 가기 위해 열차표를 예매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내가 열차표를 취소하지 않았다는 게 생각이 났다. 오마이 갓뜨... 왕복 비용으로 거의 10만 원에 육박하는 돈이었는데, 지나도 너무 한참 지난지라 10%도 환불을 받을 수가 없었다. 속이 너무 쓰린 거다.
사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가장 어이없었던 멍청비용은 내가 아이를 낳기 전 베이비 페어에 갔을 때 유모차를 산답시고 ATM기에서 현금을 30만 원 정도 뽑아서는 뒷주머니에 넣고 그냥 잊어버린 것이었다. 그날 정말 정신이 없었던 상황이라 어디에 흘렸는지, 누가 채갔는지 모르겠지만 뒷주머니의 현금이 홀랑 사라져 버렸다. 유모차를 5만 원 정도 싸게 사려다가 결국 그 두 배의 가격을 치르고 산 셈이 되었는데 그때 너무 속상한 나머지 지금까지도 그 기억이 잊히지가 않는다.
이런 멍청비용, 멍청비용에 따른 속상함이 주는 유익함도 있다.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돕는다는 거다. 돌이켜보면 나의 멍청비용은 대부분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마음 급하게 뭔가를 할 때 일어났다. 정신이 없을수록 다시 한번 내가 해야 할 일을 쭉 정리해보고 임하면 이런 비용을 좀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게 있다. 멍청비용을 이미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아니 이미 지불했다면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으므로 후회와 자책을 해봤자 마음만 상할 뿐이다. 지금의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좋은 기분으로 채워 나가는 편이 나에게 훨씬 유리하다. 멍청비용에 대한 후회와 자책은 홧김비용을 낳기 때문에 빨리 잊어버리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옳은 선택이다. 그러므로 빨리 잊고 나아가기 위해 조금 일찍 잠에 들어보는거다. 실제로 어제 나는 일찍 자는 것을 선택함으로서 스트레스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나도 건강하고 우리 가족도 건강하고, 이만하면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가끔은 멍청비용 조금은 낭비(?) 해도 괜찮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