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해 주어 고맙다

만남을 미루지 않았을 때 받은 선물

by 서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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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를 만났다.


고모는 친아버지가 7살쯤 돌아가신 뒤에 인연이 거의 끊어졌는데, 그래도 간간이 한 번씩은 뵐 기회가 있었다. 그전까지는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인 사촌오빠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 자주 왕래를 하고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어린 기억에도 참 예쁘고 착했던 고모, 고모는 내게 그립고 고맙지만 자주 보기는 어려운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성인이 되면 다시 이 관계를 이어나가겠다 생각을 했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내 결혼식에서 한 번, 친척 언니 결혼식에서 두 번 이렇게 겨우 만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언제 한 번 놀라오라는 고모의 말에 알겠다고 하고, 이번 휴직 기간에는 꼭 한 번 찾아뵈어야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5월쯤에 내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약속이 무산되었다. 그런데 어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복직을 하기 전에 해볼 수 있는 걸 다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럼 뭘 해야 할까."


그러다가 문득 고모 생각이 났다. 그리고 교회 끝나자마자 고모께 전화를 했는데 고모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고모 뭐하세요?"


"응~(잠이 덜 깬 부스스한 목소리) 나 자고 있지."


"에고 지금 주무시는 시간이구나. 저 이담이에요."


"어어~"


"이따가 저녁때쯤 가도 돼요?"


"어~와. 와와"


잠이 덜 깬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고모는 얼른 오라고 계속 이야기를 하셨다. 고모를 뵈러 가기로 하고 집에 가서 얼른 준비를 끝내고 길을 떠났다. 고맙게도 고모와 별 안면이 없는 남편이 흔쾌히 운전대를 잡아 주었다. 고모가 사는 곳은 우리 집과 그리 떨어지지 않는 곳이었는데 여길 오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그래도 고모가 사는 곳 근처에 가서 과일도 한 상자 사들고 고모 댁에 갔다.


고모는 내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 나와서 반겨주셨다. 옛날 사진도 꺼내 주시고, 내가 예전에 고모 집에 놓고 갔다던 작고 낡은 인형도 아들 손에 쥐어주셨다. 재밌는 게 꼭 그 인형이 우리 아들을 닮았다.


"그 인형 고모할머니가 너희 엄마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는 거니까 꼭 놓고 가."


고모는 이렇게 말했다. 고모가 그리움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 내외 분이랑 식당에 가서 맛있는 저녁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고모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 보러 와줘서 고마워."


"에이 뭐가 고마워요. 보고 싶어서 온 건데."


"보고 싶어 해 줘서, 그게 고마워."


고모의 말씀에 마음이 찡해졌다. 그저 만나는 것뿐인데 뭐가 그리 고마우셨을까. 고모는 우리가 이렇게 만나리라고 생각을 못하셨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 시간이 나보다 훨씬 더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간단한 일인데, 이렇게 행복해하시다니. 고모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고모는 우리와 헤어지는 게 아쉬우셨는지 근처 공원 산책도 한 바퀴 하시고는 또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안타깝게도 디저트 가게가 문이 닫아서 헤어졌어야 했지만 말이다. 이제부턴 조금 더 자주 고모를 만나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늘 미루지 않고 고모를 만나길 너무 잘했다. 선물 같이 든든한 마음을 한 껏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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