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 카페 사훈
“사실은 말야. 아까 주차장 찾아보다가 평점이 더 높은 카페를 찾았어.”
주말이다. 이번 주말엔 별 약속이 없어서 남편이 가고 싶어 하던 인스타 포스팅하기 딱 좋아 보이는 카페에 가기로 했는데 주차장이 꽉 찼다. 그래서 다른 주차장을 찾고 있는데 네이버 평점 4.8점의 근처 카페를 찾게 된 것이다. 네이버 평점 4.5 이상의 카페는 정말 드물기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원래 가려던 곳이 노키존이었다.
"하는 수 없지." 하고 실망하는 남편에게 별점 더 높은 카페를 찾았다며 그리로 가자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다.
네이버로 찾아본 카페 사훈의 내부 사진을 보니 분위기가 아주 조용해보여서 노키즈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미리 전화를 해보니 ‘노키즈 존은 아니지만 아이가 앉기엔 의자가 좀 불편할 수 있다’라고 하시기에 '완전 괜찮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그리로 향했다.
이곳은 동네 골목 매우 안쪽에 위치한 작은 커피집이었다. 외관은 깔끔했다. 가끔 힙한 카페에 가면 동네 분위기와는 좀 동떨어지게 외관을 장식해두어서 둥둥 뜨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곳은 동네 분위기와 적절히 조화를 이룬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안쪽으로 들어와 보니 분위기가 더 좋았다. 전체적으로 나무 재질을 많이 쓰고, 어두운 색의 소품을 사용해서 따뜻하지만 절제된 멋이 깃들어 있었다. 남자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카페였는데 사장님의 성격이나 취향이 잘 반영된 느낌이 들었다. 좌석은 일렬로 쭈욱 만들어져 있었는데, 수다 떨기 좋은 카페라기보다는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을 반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테이크 아웃을 해가는 손님들이 많은 것 같다.
커피 원두는 '밀'과 '화'로 이뤄져 있었는데 밀은 고소한 맛, 화는 향기로운 맛이다. 신 맛을 싫어하는 나는 '밀'을 선택하려고 했었는데 사장님이 '화'가 일반적인 로스팅보다는 신맛이 덜하지만 향이 좋다고 말씀해주셔서 자신있으신 원두라는 생각이 들어 '화'를 골랐다.
"5500원에 이런 호사를 누리면서 커피를 즐길 수 있다니, 가성비 좋은데?"
카페 사훈에서는 손님 눈앞에서 드립 커피를 내려 준다. 뭔가 '쑈'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호사를 누리는 것 같은 느낌도 난다. 아마도 이런 바 형식의 소규모 카페여서 가능한 일일 거다. "화" 원두는 사장님 말씀대로 신 맛은 덜하면서 커피 원두의 상큼한 향기를 즐길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에티오피아 원두의 과일향을 좋아하지만 강한 신 맛 때문에 속이 많이 쓰려서 즐기지를 못했는데, 이 가게의 '화' 원두는 향과 맛을 모두 즐길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사장님이 직접 로스팅을 하셔서 적절한 감도를 잘 잡아내신 것 같다.
남편이 시켰던 건 아인슈패너였다. 크림을 올렸기에 당연히 입에는 달았지만 바로 그 크림 때문에 커피 본연의 향과 맛이 묻혔다. 맛없는 원두라면 모르지만 원액 자체가 너무 맛있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커피 본연의 맛을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진한 커피를 싫어한다면 라떼 정도까지는 괜찮을 것 같다.
카페에 사람이 많이 없어서 사장님이 더치커피 두 종류를 서비스로 조금 따라 주셨다. 덕분에 밀 원두의 맛도 볼 수 있었는데 화 원두보단 좀 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있었다. 그렇지만 내 취향은 화 원두였다. 이런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는 커피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에 드립백도 한 박스 사 왔다. 7개 포장에 19,000원이다.
한 가지 아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점은 카페가 외진 곳에 작게 위치한다는 거다. 덕분에 우리 가족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긴 했지만,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카페는 좀 더 잘됐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카페 주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양질의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택했겠지만 말이다.
만약 내가 이런 가게를 운영하게 된다면 수익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니 커피콩을 다른 카페에 공급하고 계신 것 같던데, 이런 방식으로 좀 더 확장이 되거나 입소문이 더 나면 마켓 컬리나 드립백이나 더치커피를 유통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실력 있는 곳이니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묵 커피 바 도 그렇고, 카페 사훈도 그렇고 자기 이름을 내건 카페들은 평타 이상은 하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이름 걸린 곳들을 한 번 가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