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묵(MUK) 커피바
불손한 가게 투어를 한 지도 언 1개월이 넘어간다. 불손한 의도를 갖게 된 목적인 '내 가게 갖기'가 조금 미뤄진 지금 약간은 불손한 투어에 대한 의욕이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평범한 주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커피가 너무너무 마시고 싶다."
정확하게는 가게에서 직접 로스팅한 스페셜티 이상 급의 커피가 먹고 싶다는 구체적인 욕구가 생겼다. 마침 남편이 친구에게 물건을 돌려주러 밖으로 나가야 한다기에 겸사겸사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커피집을 열심히 검색해봤다. 웬만하면 가보지 않은 곳을 가 보기로 해서 네이버 지도를 켰다. 그리고 우리 동네가 아주 작게 보일만큼 줄인 다음 까페를 검색했다. 그런데 별점 4.95점짜리 까페가 내 레이더에 포착됐다.
"여기다!"
군소리 없이 잘 따라와 주는 남편은 꽤나 먼 곳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이곳으로 갔다. 이곳은 안산 대학가 한 빌라 1층에 위치한 묵 커피바다.
아마도...'묵'이라는 글자가 이 커피집 사장님 이름 속에 있는 글자겠지? 정도로 쉽게 생각하면서 이곳에 갔는데 입구에서부터 뭔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여긴 지독한 컨셉충이 만든 까페임에 틀림없다."
온통 검은색이었다. 바닥, 천장, 테이블, 의자, 식기, 직원들의 옷차림까지 채도라는 단어는 완전히 사라진 흑과 백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메뉴도 다르지 않았다. Non Coffee류를 제외하고는 커피와 디저트 모두 '흑'과 '백' 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저녁이 애매했던 우리는 묵임자라테와 브루커피, 그리고 디저트 중에서는 노글루텐 초코바 '먹'과 팬나코타 '백'을 시켜보았다.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가 나왔다. 여기는 음료가 나오면 셀프로 가져가야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직접 자리로 가져다준다. 그리고 다 먹고 나서 치우는 것도 직원이 해 준다. 이런 서비스는 너무나 오랜만이라서 '호사를 누린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핸드드립은 유리블록으로 구분된 방이 아닌 바깥의 커피바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내가 주문한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여러모로 손님들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 점 중 하나는 각각의 커피 원두에 대한 설명이 적힌 종이를 커피와 함께 준다는 점이었다. 또한 묵임자라테를 시켰을 때는 얼음이 녹으면서 커피가 연해질 수 있기 때문에 기호에 따라 샷을 추가하라고 작은 잔에 에스프레소 샷 하나를 더 추가해서 주었다. 순식간에 마셔버릴 만큼 맛이 있기 때문에 과연 누가 여기 샷을 추가해 먹을까 싶긴 하지만 나름의 치열한 고민과 여러 상황들을 가정해보면서 이런 구성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이 정도로 준비를 해야 까페 평점이 이 정도까지 좋아질 수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디저트류는 좀 실망이었다. 리뷰를 보니 휘낭시에와 바스크 치즈케이크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역시 리뷰를 따를 걸 그랬나 보다. 노글루텐 프로틴바인 먹은 아주 건강한 맛이 났고, 팬나코타인 백은 아이 분유의 느낌이 났다. 시그니처 메뉴인만큼 까페 컨셉의 정점을 만들기 위해 비주얼적으로는 애를 썼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맛이 조금 아쉬워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곳은 전반적으로 참 좋은 까페였다. 독립 카페는 이래야 한다는 느낌이 물씬 들만큼 주인장의 치열한 고민이 까페 전체에서 엿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내 가게를 연다면 적어도 이 정도의 고민의 깊이를 가지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긴장도 되었다.
안산에 갈 일이 있다면 한번 꼭 들러보시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