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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소원성취 중

몇 년 전 써 내려간 할 일 목록을 발견했다

by 서이담

<아들이 기저귀를 떼고 말을 할 줄 알게 되면 하고 싶은 일>

1. 휴가 왕창 내고 캠핑카 여행 다녀오기

2. 야구장(혹은 그 비슷한 경기) 가서 같이 응원해보기

3. 애니메이션 극장 가서 같이 보기

4. 만화책 같이 보기

5. 자전거 같이 타기

(…)


어제 핸드폰 안의 메모장을 정리하다가 이 목록을 발견했다. 아마 아이가 아주 어릴 때, 기저귀도 떼지 못하고 말도 못 했을 때 만들어 두었던 것 같다. 그때는 정말 아이가 언제 다 크나 싶었다. 아이가 울어도 왜 우는지 알지 못하니 답답하고, 엄마로서도 엄청 서투르다 보니 ‘시간아 어서 가거라~’를 늘 속으로 되뇌고 있었던 거다. 그맘때 아이가 크면 하고 싶은 일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두었는데, 지금 보니 어느새 아이는 어린이가 되었고, 목록의 대부분을 차근히 해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최근에 사촌 언니가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기 한 달 전쯤인가 언니 집엘 갔었는데, 언니가 여러 가지 출산 준비물을 사 두고 또 이런저런 계획들을 세워놓고 있는 걸 봤다.


‘그땐 그랬었지.’


내 생각이 났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 나도 두근대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아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했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서 내가 했던 준비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갓 태어난,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많이 허둥대고 실수를 반복했다. 마음이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체력까지 바닥을 보였던 깜깜한 그 시절을 벗어나 아이랑 있는 게 조금은 익숙해질 무렵 아마 저 리스트를 적었던 것 같다. 육아가 많이 쉬워질 내 미래를 그리면서 말이다.


리스트를 보니 참 신기하고 고맙다. 어느새 아이가 커서 나와 함께 의사소통을 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큰 제약 없이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리스트에 있는 일들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는 것도 신기했다.


“우리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남편에게 리스트를 보내주면서 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리들, 꿈꾼 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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