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사비처럼 글쓰기

자기 시간이 거의 없는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것은

by 서이담

매일 글을 쓸 수 있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데려오기 전까지 나에게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주어졌다. 별 약속이 없으면 난 매일 운동을 하고, 나를 위한 점심을 차려 먹고, 글을 쓰고, 유튜브를 보고, 도서관에 갔다. 이런 일상이 내게는 너무 당연해졌다. 당연했기에 감사하는 것도 잊었다.


복직을 한 뒤 상황은 달라졌다. 휴직 전까지도 하루에 한 편을 목표로 글을 썼었기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쉬울 줄 알았다.


그렇지가 않았다.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으니 아이가 침대와 소파를 오가며 내 눈앞을 우루루 뛰어다녔다. 남편은 그런 아이를 돌보다가 며칠 전부터 마음먹었던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 스크립트를 가져와서는 소파에 앉아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몇 분 뒤 남편은 원어민 영어 선생님의 전화를 받으러 다른 방으로 갔다. 그때 이미 저녁 시간은 한참이 지나 있었고 식탁에는 다 식어버린 아이의 밥과 국이 놓여 있었다. 키보드에서 지지부진하게 움직이고 있던 손가락을 떼고 어린이용 숟가락을 쥐었다. 한창 노느라 장난기 가득한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협박과 회유를 왔다 갔다 하며 국에 만 밥을 떠먹였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돌아왔다.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큰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다. 조금 조용해진 틈을 타 다시 의자에 앉았다. 회사에서 긴장을 한 탓인지 두 번째 육아 출근으로 지쳐서인지 구멍이 뻥뻥 뚫린듯한 몸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정신을 다 긁어모아본다. 글을 쓴다. 고친다. 쓴다. 또 고친다. 글에 어울리는 그림을 구상하고 그림에 쓸 이미지를 구글로 찾아본다. 딱히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지 않아 이리저리 사이트를 오간다. 어느 정도 만족할만한 수준의 자료를 찾았다. 자료를 보면서 구상해 둔 그림을 그린다. 색칠을 한다. 수정을 하고 비율을 맞춘다. 그림이 완성되면 글 사이에 그림을 적절히 맞추어 넣는다. 마지막으로 맞춤법을 체크하고 글의 구성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글을 업로드한다.


시간이 세 배 정도 걸렸다.


글을 쓸 때는 집중이 도무지 되지 않는 상황이 괴로웠다. 헛웃음도 났다. 글을 완성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꽤나 오래 품어 왔고 복직한 뒤 적응을 한답시고 글쓰기를 일주일 정도 쉬었기 때문에 그만 둘 수가 없었다.


다음날, 남편은 내 글이 좋다고 했다. 또 헛웃음이 났다. 마침 나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쉽게 쓴 글은 하얀 물에 내 손가락을 살짝 찍은 것 같은 가벼운 느낌이었다면, 힘들게 쓴 그 글에는 나의 일부가 생와사비처럼 강판에 갈려 파슬파슬한 모습으로 풀어져 있었다. 내 생각과 감정이 뚝뚝 묻어져 더 진하고 텁텁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쓴 글이 더 좋다는 게, 앞으로 쭉 이렇게 글을 써야 한다는 게 다행스러우면서도 어쩔수 없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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