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요즘 아이가 자기 이름을 쓰는 재미에 빠졌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아이는 자기 이름을 쓸 줄 몰랐다. 억지로 뭔가를 알려주기보다는 스스로 깨치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서 일부러 한글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런데 유치원에 입학하고 선생님과 처음 전화 상담을 하면서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님~재민이한테 자기 이름 정도 쓰는 법 정도는 알려 주셔도 돼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안심한 나는 그날 저녁에 바로 가르침을 실천했다. 큰 도화지에 아이 이름을 또박또박 쓰고는 이게 너의 이름이라고 알려주었다.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름을 바라봤다. 그리고 몇 번이나 그 이름을 반복해서 쓰더니 다음 날부터 이름을 쓸 수 있는 모든 것에 그리기 시작했다. 글씨라기보다는 그림처럼 벽돌을 올리듯 밑에서부터 위로 쌓기도 하고, 가끔은 모음의 좌우를 바꾸어 쓰거나 “재민”이 아닌 “민재”처럼 글자 순서를 바꾸어 쓰기도 했다. 이름을 희한하게 쓰긴 했지만, 자기 그림에 다른 아이의 이름을 쓴 적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며칠 전 나는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갔다. 그 놀이동산에는 장난감 블록을 가지고 노는 코너가 있었는데 아이가 유난히 그곳을 좋아했다. 할 일이 없는 부모로서는 약간 지겹기도 하고 무료하기도 해서 자연스레 사람 구경을 하게 됐다. 그러다 한 남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는 딱 보기에도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을 멋지게 입고 있었다. 눈을 조금 돌려보니 그 아이의 엄마도 세련되고 조금은 특이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한정판 신상 같았다. 그런데 아이의 차림새를 유심히 보다 보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모자에는 나이키 로고가, 산뜻하고 청량한 색의 티셔츠에는 뉴발란스 마크가, 톡톡해 보이는 하의에는 노스페이스 상표가,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신발에는 세 줄짜리 아디다스 로고가 더덕더덕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걸치고 있는 거의 모든 것에 남의 이름이, 아니 이름들이 쓰여 있었다.
이맘때 대부분의 아이는 자기 이름을 좋아한다. 자기 이름을 온갖 군데에 붙이고 그걸 자랑하고 드러내려 애쓴다. 그런 아이를 보면 자신의 이름을 귀히 여기는 게 인간의 본성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은 자기의 이름보다는 다른 이들의 이름을 쫓는다. 놀이동산의 그 아이처럼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비싼 돈을 내고 주렁주렁 달고 그걸 마치 나의 정체성처럼 여기며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정작 내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내 이름은 어떻게 되었을까? 밖에 드러나지 않는 만큼 내 안에서 더욱 선명해졌을까? 아니면 밖에서도 안에서도 다른 이름들에 묻혀 버렸을까?
이런 게 궁금해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