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P적 행복

행복은 늘 계획 속에 있진 않다.

by 서이담

“내일 뭐 하지?”


이번 연휴는 유난히 길었다. 친정과 시댁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계획 속에 시간을 꼭꼭 채우고 마지막 하루를 남겨두었다. 뭘 할까 생각을 해봤지만 별다른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집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남산 둘레길이 산책하기 좋던데 거길 가볼까, 일산에 우리 가족이 늘 가던 쇼핑몰에 가볼까.’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저장해 둔 피드를 둘러봤다. 거기에 있던 지방의 한 분위기 좋은 카페를 남편에게 슬쩍 찔러봤더니 남편이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길로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카페에 가게 되었다.


“형님한테 한 번 연락해 보는 게 어떨까? 지금 가려는 곳과 꽤 가까운 곳에 사시잖아.”


위치 감각이 젬병이었던 나는 내가 가고 싶어 한 카페가 큰 오빠네가 사는 동네와 가까운 줄도 몰랐다. 그런데 남편이 카페와 큰 오빠네가 가깝다며 연락을 한 번 해보자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큰 오빠네도 오늘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터라 각자 점심을 먹고 늦은 오후에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근처에 가볼 만한 곳에 가봅시다.”


네이버 지도를 살펴보니 카페 근처에 평이 괜찮은 중국집이 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곱빼기로 시키고, 탕수육과 짬뽕도 시켰다. 아이는 꽤나 많은 양의 짜장면을 후루룩 먹고 옛날 스타일의 탕수육도 남김없이 먹었다. 점심을 먹고도 시간이 남아서 다른 곳에도 가봤다. 근처에 역사 유적지가 있었다. 소화도 시킬 겸 유적지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근처 체육공원으로 향했다. 체육공원 안에는 놀이터가 자그마하게 있었는데 거기서 아이와 남편과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구급차가 도착하더니 구급대원이 우리에게 곧 헬기가 올 거라고 놀이터에서 조금 피해 있는 게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놀이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이 소식을 듣고 헬기를 보러 모여든 마을 사람들 곁으로 갔다. 그리고 헬기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슈 우우우우우~웅

바바 바바 바바~앙


헬기가 엄청난 굉음과 바람을 가지고 운동장에 도착했다.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근처 산에서 어떤 사람이 넘어져 다쳐서 환자 수송을 위해 헬기를 띄웠다고 했다. 근처 병원에 헬기 착륙장이 없었기 때문에 공원에 헬기가 왔던 것 같았다. 헬기에 탄 사람들과 구급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구조된 사람은 구급차로 실려갔다. 임무를 마치고 유유히 떠나는 헬기 안에서 우리 아이를 본 대원 한 분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셨다. 아이와 우리 부부도 고마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우리는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여러 가지 오브제로 멋지게 꾸며져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커피 맛이 별로였다. 요즘 세대의 카페는 커피를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분위기를 파는 곳이 되었다지만 아직 커피 맛이 중요한 나는 참 아쉬웠다. 만약 이 동네에 와서 카페만 들렀다 갔다면 정말 많이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지 않아 큰오빠네 부부가 카페에 도착했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큰오빠와 새언니가 저녁이나 먹고 가라며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다. 우리는 혹시 폐가 될까 싶어 조금 망설이다가 흔쾌히 가기로 했다.


정말 여기까지 계획했던 건 아니었는데 사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저녁식사였다. 언니 오빠가 차려준 밥상에 우리가 사 온 음식을 놓고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즐겼다. 비슷한 또래의 대화여서인지 대화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 즉흥적으로 초대를 해주고, 또 초대에 응하면서 만들어진 행복이었다.


돌아보면 이 날 계획했던 것들은 실패했거나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계획하지 않고 내게 그냥 찾아온 일들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행복은 계획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행복은 오히려 내 계획이 무너졌을 때 오기도 한다. 그때 온 행복은 더 강하고 진하다. 이런 일들을 여러 번 겪고 나니 이제는 계획이 틀어져도 크게 실망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뒤에 더 큰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너무 빨리 실망하고 좌절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마음들이 내 행복을 앗아갈 수 있으니. 행복을 계획에서 찾지는 못한다는 걸 이제 조금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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