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배운 삶의 지혜
“점심을 먹으려고 지갑을 찾는데 지갑이 없는 거야”
“어머어머”
엄마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그때 은퇴를 했다. 그리고 3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하고 있었던 유럽 여행을 지난주에 떠났다. 평소에도 하루에 한 번 정도 연락을 하는 우리 모녀는 여행 중에도 시차가 맞는 오후 2시 정도에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오늘은 이런 문자가 왔다.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하는 수 없지 하고 포기하고 여행에 집중했는데 호텔에 오니 어제 입은 외투 주머니에 지갑이 있더라고.”
“아구 다행이다. 엄마 놀라셨겠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데 얼마 전 떠났던 여행이 생각이 났다. 가이드도 없고 통역도 없이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 이렇게 우리 가족 셋이 달랑 떠난 여행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뜻하지 못한 상황에 마주했다. 요금 정산하는 방법을 몰라 주차장에서 10만 원짜리 벌금 딱지를 떼기도 하고, 기념품으로 사가겠다고 비싼 치즈를 세 덩어리나 사놓고서는 숙소 냉장고에 고스란히 넣어두고 그냥 오기도 했다. 또 호텔 주차장에서 누군가가 차 뒤편을 긁고 지나갔는데 하필 그 호텔에는 CCTV가 없어서 누가 그랬는지 알아볼 여력도 없이 렌터카 회사에 차 수리비를 모두 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황스러움과 불안함에 요동을 치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잊어버리자. 이 일로 낭비하는 시간과 감정이 아깝다. 여행을 하는 이 순간이 내 인생에는 훨씬 더 귀중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여행에서 갑작스럽게 내는 벌금도, 치즈 값도, 수리비도 이곳을 떠나오려고 지출한 여행경비보다 크지 않다. 여행에서 즐기는 시간과 추억을 값으로 따진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저 코 앞에 닥친 일이어서 더 크고 무거워 보일 뿐이다. 게다가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으니 얼른 잊어버리고 여행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기는 게 남는 장사다. 이걸 생각하고 난 뒤부터는 불쾌한 일이 생겨도 내가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하면 빨리 잊고 넘어가는 (적어도 넘어가려고 노력하는) 지혜가 생겼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결과적으론 그런 일들조차 모두 추억이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에서도 이런 생각 훈련은 계속되었다. 변수가 생길 때마다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눈앞에 있는 나쁜 일이 내 삶을 잠식시킬 정도로 무겁고 커 보이지만, 다음 주쯤에는 기억도 못할 일이라고. 이 일로 불안에 떨기보다는 빨리 잊고 좋은 일들을 더 생각하는 게 내 인생에는 훨씬 유익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 나를 발견하게 된다.
엄마는 지갑을 잃어버렸던 오늘,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을 받으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셨다고 했다. 크~ 역시 울 엄마가 한 수 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