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지만 필요한 설득과 경청
‘이게 뭐라고 이렇게 피 튀기면서 설득을 한 거지?’
팀을 옮기고 나서 정말 의도치 않게 일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일을 하다 보면 내가 흥분해서 목소리가 커지는 바람에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는 몇 초 전의 내 모습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정말 일을 열심히 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예전에는 팀 사람들과 업무가 아닌 다른 일들로 얼굴 붉힐 일이 많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치를 보느라 그랬다. 그런데 이 팀 멤버들과는 그런 일들이 없다. 사적인 일에는 하하 호호 웃으면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일에 관해서는 거의 싸우듯이 토론을 펼친다. 고백하건대 한 두 번 정도는 진짜 싸움이 난 적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의견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좌충우돌하면서 결국엔 어떤 결론으로 함께 가는 때가 있다. 여러 가지 논리를 대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이 논리에 설득된 사람이 함께 다른 사람에게 같은 주장을 하고, 또 이 말을 들은 사람이 의견을 바꾸어 나간다. 여기서 그런 과정들을 계속해 가면서 공통의 의견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공통 의견은 꽤나 힘이 세다.
공통 의견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상명하복 식의 과정보다 매우 더디다. 먼저 전제조건을 설명하자면 이런 일을 만들어 가려면 직급이 높은 직원도 ‘내가 경험이 많으니까 내가 옳다.’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편견 없이 직급이 낮은 직원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직급이 낮은 직원의 말이 옳다면 용기 있게 자신의 의견을 바꿀 수도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낮은 직급 팀원들은 윗 직급 사람들의 말을 무조건 맞다며 맞장구치지 말고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소신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이 소양에도 역시 용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팀 안에서 모든 사람이 열린 자세로 서로의 의견을 들으려고 할 때에 비로소 공통 의견을 만들어 낼 준비가 된 것이다. 사실 회사 안에서 이 준비가 된 팀을 찾기도 어렵다. 난 처음 봤으니까.
다음은 의견을 내는 과정이다. 사실 사람은 자신의 주장과 자기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내 의견이 거절당했을 때 꼭 본인이 거절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논의를 위해서는 먼저 그런 마음부터 버려야 한다. 팀에서 두 번 정도 험악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그중 한 번은 내가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꼭 나 자신이 무시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과하게 흥분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덤볐던 선배님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고, 나도 기분 좋게 사과를 하고 일이 마무리되었지만 큰일이 날 뻔했다.
만약 자신의 의견이 거절당한다고 하더라도 쿨하게 그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거절하는 사람도 좀 더 상대방을 배려한 부드러운 방식으로 거절하는 편이 좋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언젠가는 합의가 되거나 모두 이해가 되는 지점이 온다. 이때부터 그 의견은 큰 힘을 얻기 시작한다. 모두가 ‘지지하는’ 결론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이 결론은 대체로 최상의 결과를 가져온다. 회사 다니면서 몇 안 되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만약 자신이 낸 의견에 모두가 끄덕거리며 동의한다면 한 번쯤 의심해 보면 좋겠다. 아무 일도 없이 순조로이 내 의견이 받아들여질 때, 기분이 으쓱하며 자만심이 들 때, 내 경험으론 바로 그때가 가장 위험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서로가 의견은 다르지만 설득과 인정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좋은 결론이 내려진다고 믿는다. 뛰어난 한 사람보다 보통의 여러 사람이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를 많이 봤으니까. 오히려 마음에 여유를 갖고 상대방의 의견에 집중해보는 연습을 꼭 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한 층 더 성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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