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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짜리 큰 개와 아이

by 서이담

여행을 다녀왔다. 세 가족이 함께 떠난 여행이라 큰 통나무집으로 된 숙소를 잡았는데, 비교적 외진 곳에 있어서 가격이 저렴했다. 이런 곳에도 숙소가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구불구불하고 울창한 숲길을 지나서야 통나무 집 여러 채가 나왔다. 숲 속 한가운데 위치한 숙소 창가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보였다. 시설은 그냥 그랬지만, 뷰가 참 좋은 곳이었다.


‘산책을 해야겠다.’


아침 러닝을 즐기는 요즘인지라 산책 욕심이 났다. 대가족이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아이를 봐줄 사람도 많았고, 겸사겸사 남편도 함께 깨워서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외진 곳이었다. 우리는 산책을 하다가 숲에서 뭔가가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뿔 달린 사슴 같은 생명체였다. 생명체도 우릴 발견했다. 그리고서는 “꽥!!!!”하는 엄청난 크기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 동영상을 찍고 있던 카메라를 놓칠 뻔했다. 뿔 달린 그 생명체는 숙소에 돌아와 잘 찾아보니 노루였다. 숲 속 저편에서도 엄청난 울음소리가 들렸다. 두 마리의 노루는 다른 무리에게 “인간이 나타났다!”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산책을 포기할 뻔했지만 남편이 야생동물이니 우리 근처엔 오지 않을 것 같다며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숲 속 오솔길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우리만 있을 것 같던 오솔길이었는데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눈을 들어보니 한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분이 큰 개와 함께 길 저편에서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개의 크기가 엄청났다. 개라기 보단 늑대나 곰에 가까워 보였다. 평소에 작은 개도 무서워하는 나는 남편을 바깥으로 하고 자리를 슬쩍 비켰다. 우리가 두려워할 거라는 걸 짐작했는지 여자분은 계속 우리를 안심시키는 말들을 하셨다.


“산책하시나 봐요. 저희 개가 아직 아가라 호기심이 좀 많아요.”


아가라니. 주인은 개가 6개월 정도 되었다고 했다. 훈련을 잘 받았는지 늑대처럼 보이는 강아지는 짖거나 으르렁 거리지 않았는데 존재 자체만으로도 꽤나 위협적이었다. 이런 숲 속에서 살고 있으니 저런 개를 키울 수 있지 싶었다. 아니다. 저런 개를 키우기 위해 이런 곳으로 이사를 와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강아지는 주인을 힘으로 조금 밀어내고 남편 바지 쪽으로 코를 들이밀어 냄새를 조금 맡더니 이내 가던 길을 갔다.


“휴~ 진짜 큰 개였어.”


“정말! 저렇게 큰 개는 어떤 종류일까? 궁금하다.”


“키우려면 진짜 힘들 것 같아. 힘도 엄청 세 보이던데”


“나는 6개월 되었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 6개월 사이에 저렇게 몸집이 불어나려면 도대체 얼마나 먹을까?”


“사람보다 많이 먹을지도 몰라.”


“진짜 그럴걸!”


남편과 한동안 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저 주인은 개를 키우기 위해 최적의 환경으로 이사를 했을 것이고, 그게 인적이 드문 제주의 이 동네였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크고 체력이 좋은 개를 남들에게 공포심을 주지 않고 산책을 시키려면 새벽 6시를 갓 넘긴 이런 이른 시간에 산책을 해야 할 것이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개에 대해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하는 일을 거의 매일 반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먹어대는 개의 사료를 대느라 한 달에도 꽤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개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


사람을 키우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대개는 개를 키우는 데 드는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그 존재 자체를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진다. 그게 우리가 부모가 되어 느끼는 책임이자 특권이다. 매일 아침 늑대만 한 개를 산책시키는 그 근실함으로 나는 나의 일을 해야겠다.


참, 그 개의 종류는 코카시안 오브차카였다. 맹수이지만 주인에게는 그렇게 순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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