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뛰어 넘는 맛
초등학생 시절, 내가 가장 싫어하는 학교 급식 메뉴는 바로 카레였다. 카레의 톡 쏘는 향이 싫었고, 오뚜기 카레가루로 만든 노란 카레는 뭔가 비렸다. 그리고 카레가 나오는 날은 카레가 메인 메뉴인만큼 다른 반찬이 단출했는데, 카레를 먹지 않는 나로서는 먹을 반찬이 없었다. 그래서 카레가 나오는 날은 기분이 별로였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스스로 카레를 만든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루 카레 덕분이다. 루(lou)란 국물을 응축해 만든 고형 큐브를 의미하는데, 슈퍼마켓에서 우연히 이 루 카레를 발견하고 이걸로 카레를 만들고 나서는 다른 카레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맛에 카레에 반해버렸다. 요즘에는 집 앞 슈퍼에서도 이 루 카레를 판다.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해서 온 제품들인데, 나는 바몬드 카레 약간 매운맛이나 순한 맛을 골라 요리를 한다.
루 카레를 사고 종이 포장을 열면 루가 크게 두 덩이로 나눠져 있다. 한 덩이가 6인분이므로, 나는 보통 한 덩이는 냉동실로 보낸다. 그러고 나서 집에서 남는 채소를 몽땅 꺼낸다. 보통 당근이나 양파를 넣긴 하지만, 무도 의외로 잘 어울린다. 지난번에는 친구 엄마가 농사지으신 비트가 잘 먹어지지 않아서 큼직하게 썰어 넣어 보았는데 카레 색깔이 보라색으로 변했는데 꽤나 이색적이었다. 맛은 꽤 괜찮았다. 또 밥에 넣어 먹을 거라고 보관해 두었던 삶은 옥수수 알갱이나 은행 혹은 콩 등도 카레랑 잘 어울린다. 포슬 한 감자를 넣어도 좋지만 고구마를 넣어도 맛이 참 좋다. 오늘은 당근이 남아서 당근을 큼직하게 썰어주고, 양파와 애호박도 꺼내 비슷한 크기로 썰어주었다. 그리고 오늘은 색다르게 돼지고기와 해물을 같이 넣어서 카레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자 이제 재료 준비를 다 했으니 카레를 만들 차례다. 우선 깊은 스테인리스 냄비를 가스 불에 올려 달구어준다. 그리고 올리브유를 넉넉히 부어준 뒤 제일 익히기 오래 걸리는 순서로 재료들을 하나하나 넣어서 볶아준다. 경험상 당근이 돼지고기보다 더 오래 익혀야 했기에 당근을 먼저 넣은 뒤 달달 볶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돼지고기와 해물을 넣고 더 볶아준 다음, 고기의 붉은 기가 어느 정도 가실 즈음 양파와 다른 채소들을 듬뿍 넣고 볶아준다. 만약 올리브유가 좀 부족하다 싶으면 이때 조금 더 추가해준다. 채소가 다 익어 흐물흐물해질 때쯤 물 700ml를 넣어 한 번 팔팔 끓여준다. 그리고 팔팔 끓었다 싶을 즈음 루 카레를 부숴서 넣어준다. 그리고 한 10분 정도 주걱으로 저어준다. 주걱으로 젓는 이유는 고형이었던 루 카레가 형체를 잃고 녹아들 때까지 저어주어야 하고 또 냄비 바닥에 재료들이 눌어붙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이렇게 한번 팔팔 끓이고 나면 이제는 약불로 뭉근하게 오래 끓여준다. 젓가락을 꺼내 조금 큼지막하게 썰린 당근을 쿡 찔러본다. 당근이 물렁해지지 않았다. 물렁해질 때까지 익혀주고 먹으면 된다.
당근이 물렁해졌다면 카레 불을 살짝 꺼 주고, 며칠 전 만들어놨던 빵을 꺼내 오븐에 5분 정도 구워준다. 집에 치즈가 있다면 빵 위에 살포시 얹어 오븐에 구워주면 훨씬 풍미가 좋다. 오븐이 땡 하고 울리면 동그란 볼에 카레를 듬뿍 올리고 그 위에 구워 놓은 빵을 카레가 묻지 않도록 포개어 둔다.
이제 먹을 시간이다. 바삭바삭한 빵을 먼저 한 입 먹어본다. 이 상태로도 참 맛있다. 카레를 스푼으로 듬뿍 떠서 한 입 먹는다. 카레와 야채, 고기의 조합이 참 좋다. 이번에 해물을 슬쩍 넣어본 시도도 좋았다. 감칠맛이 더해져서 무척 맛이 좋다. 다만 좀 빨리 먹어야 할 것 같다. 바삭한 빵을 카레에 쿡 찍어서 먹어본다. 바삭했던 질감이 폭신해지면서 빵이 스펀지처럼 카레를 흡수해 너무 맛있는 한 입이 되었다. 행복하구먼!
어렸을 때는 그렇게 싫었던 음식인데, 이제는 스스로 찾고 즐기게 되다니. 편견을 갖지 않길 정말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