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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Feb 19. 2024

볼펜이 딸깍거려서 퇴사합니다.

내 마음의 객관화

회사에서 한 소리를 들었다. 별 것 아닌 소리였는데 잔뜩 예민해있던 나에게는 꽤 충격이었나 보다. 마음에 먹구름이 끼었다. 표정도 어두워졌다. ‘회사를 이렇게 계속 다녀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주말 내내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가 교회에 갔다.


예배는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순서로 흘러갔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읽고, 찬양대가 찬양을 하고 드디어 목사님의 설교 말씀 순서가 되었다. 목사님이 앞으로 나와 설교를 시작하려 하시다가 문득 뒤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갑자기 정적이 돌더니 목사님이 씩 웃으셨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뒤에 앉아있던 사회자에게 한 마디 말씀을 하셨다.


“사회자님. 볼펜 딸깍 거리지 말아 주세요.”


사회자 분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설교가 시작되었다.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내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 자리에 사회자분이 아닌 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나는 아마도 사회자분이 그랬던 것처럼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얼굴이 빨개졌을 거다. 꼭 그렇게 예배 중에 꼬집어서 이야기를 하셔야 했는지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을 것 같다. 아마 설교에 집중도 하지 못했을 거고, 그날 하루를 나쁜 기분으로 망쳐버렸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잡념은 길게 가진 못했고, 나는 다시 목사님의 설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설교 마지막이 가까워 왔다. 목사님의 말씀이 핵심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때 사회자분의 아멘 하는 입모양을 보았다.


‘대단하다. 이 분은 개의치 않고 설교에 집중하셨구나. 주의를 흔들리지 않으셨구나.‘


누군가가 나에게 한마디 말을 던질 수 있다. 그 던진 말을 받느냐 마느냐는 내가 선택하는 거다. 말 한마디에 휘청거리는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면, 볼펜 딸각거리지 말라고 하는 그 소리에 교회를 옮겨버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 참 어리석은 일 아닌가.


그저 지나가는 소리를 지나가게 두자. 받아들일건 받아들이고 감정은 날려 보내자. 그리고 정말 나에게 중요한 것들에 더 집중하고 싶다. 내가 그렇게 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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