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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평범해서 용기가 생긴다

조금만 더 버텨서 조금 더 바꿔보기로 했다

by 서이담

어느 주말, 남편과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갔다. 여러 아파트의 놀이터를 순회공연하듯이 다니는데 저쪽에 다른 부부도 또래 남자아이를 데려와서 놀고 있었다. “같이 놀자고 말해볼래?”라고 아이 등을 살짝 떠밀어 주었더니 두 아이는 금방 친해져서 하하 호호하며 놀이터를 뛰어다녔다. 또래 아이로 보였는데 그 친구는 여기저기 기구들에 매달려보기도 하면서 잘 놀았다. 우리 아이도 그 친구를 따라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놀이터를 활보했다. 기분 좋은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만 눈이 갔었는데 어느새 그 아이의 부모가 보였다. 휴일 아침 헝클어진(정확히는 떡진) 머리로 나와 아이의 안전을 살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빠, 지친 기색은 있지만 최대한 아이의 말에 성심껏 대답해주며 틈틈이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뒤적이는 엄마, 그리고 열심히 뛰고 재잘대는 아이.

‘저 가족의 모습이 우리 가족의 모습과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나만 발을 동동 굴러야 하나.’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아직도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조금 일찍 아이를 낳은 편이었기 때문에 나와 같이 아이 어린이집 문제나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이 충돌하는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친구가 많이 없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런 문제를 고민하면 일을 등한시하는 사람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 출산율이 낮은 큰 원인은 사회구조적인 불안이다. 취업도 어렵고, 돈 모아서 집을 사기도 어렵고, 그래서 나 외의 타인과 가정을 꾸리는 것조차 꿈꾸기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도 챙기기가 힘든데 아이까지 책임지기는 어렵지 않겠나?




직접 아이를 낳고 휴직과 복직을 해보면서 출산율 증가를 위해 마련된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정책들을 몸으로 접하게 되었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우선 예방접종은 무료다. 어린이집도 무료다. (유치원은 담당 정부부처가 달라 비용이 든다.)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에겐 보조금이 나온다. 이 내용만 들으면 참 애 낳아 키우기 좋은 세상 같다. 그런데 나처럼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고민을 한다. 도대체 내 애를 마음 편히 믿고 맡길 데가 없단다. 돌봄 교실 같은 곳이 있긴 하지만 그곳에 계신 선생님들은 과연 제대로 교육을 받은 분들이 맞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아이 어린이집을 바꿀 일이 생겨 여기저기 알아봤었는데, 집과 가까운 곳에는 한 곳도 자리가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겨우겨우 직장 근처에 어린이집을 찾았다. 다른 곳에 자리가 부족했으니 조건을 꼼꼼히 따져서 아이를 보낼 수도 없었다.


아직 대한민국에서 친정이나 시댁 부모님 혹은 돈 주고 고용해야 하는 이모님의 도움이 없이는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두 명 까지는 키우면서 일 하는 사람을 봤다. 그런데 세 명부터는 어렵다. 다둥이 카드?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정도 돈으로는 이모님 한 분도 고용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이모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 길도 없다.




그런데 그 날 가만히 다른 가족의 모습을 보다 보니 이런 불평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이런 내 모습도 이 시대의 평범한 모습이구나.’


이 생각이 들어 불쑥 용기가 생겼다. 언젠가는 더 나아지겠지. 그리고 나아지려면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될 때까지 더 버텨야 한다.


“라떼는 말이야…”하고 내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걷도록 하기보다는 모두가 다 행복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Photo by Taylor Heer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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