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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Apr 06. 2021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왜 몰러?

01 내가 알지못했던 할머니의 모습 꺼내기


퇴근을 하고 거의 8시가 되어가던 어느 날, 이 날은 할머니께 인터뷰를 청하기로 마음먹은 날이다. 

할머니를 인터뷰하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기분 좋아하실까? 혹시 거절하시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과 기대를 안고 수화기를 들었다.




나: 할머니!!
할머니: 어어 그래~ 

아마도 내 목소리를 바로 알아채지 못하셨던 것 같다.
나: 할머니 저예요. 이담이!
할머니: 어어 이담이!! 그래 잘 지냈냐? 네 남편이랑 아들은 잘 있고?
나: 네네. 잘 있죠. 할머니 이번 명절에는 할머니 집에 내려가려고 해요.

할머니: 나 보러 온다고? 시댁은?
나: 이번 명절에는 5인 이상 모이지를 못해서 시댁도 친정도 가족모임을 갖지 않기로 했어요.

코로나가 부쩍 심했었던 올해, 친정도 시댁도 모두 가지 않기로 했는데 오히려 그래서 인터뷰할 짬이 났다.

럭-키!
할머니: 그럼 시댁에도 친정에도 안 가는데 여기엘 오겠다고?
나: 네, 할머니한테 궁금한 게 많아서요. 정확히 말하자면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서요.




할머니는 예상외로 무척 좋아라 하셨다. 


내가 예전부터 엄마처럼 책을 많이 보더라니 글을 쓰게 되었구나 하면서 칭찬을 하셨다. 그리고는 어떤 방법이든 괜찮으니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하셨다. 아마도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남길 수 있다는 기쁨과 오랜만에 손녀와 이야기를 오랫동안 할 수 있겠다는 설렘이 오갔으리라.




할머니: 저녁은 먹었니? 
나: 네 먹었어요.

사실은 안 먹었다. 그런데 8시 넘어서까지 밥도 안 먹었냐고 잔소리하실 게 뻔해서 둘러대었다.

할머니: 네가 글 쓰는 거 말여. 그래 알았다. 근데 왜 갑자기 나에 대한 책을 쓸 생각을 했대? 내가 뭐 엄청난 굴곡이 있는 인생을 산 건 아니잖어.
나: 그냥, 쓰고 싶었어요. 생각해보니 내가 할머니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거 같지 않더라고요. 

차마 영정 사진처럼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말을 내뱉진 못했다. 그래도 할머니를 글로 담고 싶다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할머니: 그렇게 오래 같이 살았는데 왜 몰라?
나: 아니, 내가 태어난 이후의 할머니만 알지 그 전의 할머니는 모르잖아요. 그래서 할머니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어요.

할머니: 난 뭐 남들처럼 전쟁을 심하게 겪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그 속에서도 굴곡이 있는 삶을 살았지. 글을 쓰려면 얘, 아주 가난했다가 성공했다는 그런 글이나 아주 부자로 살다가 망했다는 그런 이야기가 재미있을 텐데 애석하게도 내 얘기는 그런 이야기는 아녀. 살면서 고생해가며 여러 가지를 느꼈던 그냥 평범한 이야기지.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이 대목이 되게 귀여웠다. 굴곡이 있는 삶을 훈장처럼 이야기하시는 할머니. 평범했다면 평범했겠지만 그 속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딸로서,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많은 눈물과 기쁨이 있었으리라.




나: 어쨌든 할머니 이번 연휴에 한 번 들를 테니까, 아주 어릴 적부터 할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시고, 생각날 때마다 한 번 기록도 해보셔요.
할머니: 그래 알었다~ 근데 생각이 잘 날 지 모르겠어. 나도 이제 나이가 먹어가지고.


사실 나는 여기서 통화를 끊으려고 했었는데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벌써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의 유년기, 청년기, 결혼 이후, 자식들에 대한 것 등에 대해 질문 리스트를 먼저 만들어 두었지만, 이런 건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할머니와의 인터뷰는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되었으니까.


To be continued...


Photo by Quino A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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