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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Jul 19. 2021

우리는 매일 죽는 연습을 한다

죽음과 일상

Photo by Aron Visuals on Unsplash
그러고 보면 죽음을 떠올리는 일은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면서 시작된다.

지난주 남편 외할아버님이 위독해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임종을 지키러 외가에 갔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도 임종은 예외였기에, 혹시나 해서 참고요.) 외할아버님 나이가 벌써 90 넘으시고 거동이 좋지 않으셨던 편이라 다들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자식과 손주들 모두 울음을 참는 모습으로 들어와 걱정하고 슬퍼하며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모습을 보니 손주며느리로서  슬픔에서 살짝 비껴 있었던 나는 '할아버지가 인생을   사셨구나.' 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식을 낳고 나서 부모의 죽음을 겪는다. 그건 어찌 보면 신의 계획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우리는 자식의 오물을 기꺼이 받는다. 그걸 닦고 치우고 말도 통하지 않는 말하자면 동물에 가까운 인간을 사회적 인간으로 기어이 키워낸다. 그것은 내 자식같이 귀한 존재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마치고 난 뒤 그제야 우리는 부모의 병시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이의 태어남이 아니었다면 노인의 죽음을 준비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매일 잠에 든다. 어디로 갈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우리는 잠에 든다. 마치 죽음을 준비하는 자들이 숨을 길게 들이쉬고 내뱉듯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호흡하며 우리의 정신을 아득한 저 너머로 보낸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죽음을 연습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일상 속에 죽음이 잔잔하게 매일 스며들어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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