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보단 포기가 편하지만, 포기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더라
최근에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
"그냥 햄버거 굽듯이 해~!"
이 말이 어떤 의미냐면 상사가 시킨 일이 납득이 가지 않을 때 그 일을 물고 늘어지기 보다는 그냥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를 하는 알바생이 햄버거를 굽듯 아무 생각 없이 따르라는 의미다.
에잇, 그냥 해버리자! 하고 '햄버거나 굽자!'하고 마음을 먹었었지만 내 마음에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 일을 한 두번 하고 그런 일들이 쌓여갔다. 그렇게 소소한 일들에 대한 경험들이 쌓이다가 어제 드디어 펑 터져버렸다.
어제는 상사가 갑자기 만들어두었던 보고서를 전반적으로 다 수정을 하라고 지시를 했다. 그런데 그 수정하라는 내용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막막했다. 이걸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으며 다 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였다.
수정의 계기가 된 건 한 유관부서 사람의 막말때문이었다. 우리 팀이 만들어 둔 결과물을 보고 스쳐 지나가듯이 "이 보고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건가요?" 하는 말이 기폭제가 되었다.
이 말이 상사의 마음을 휘저어놓았고 그래서 우리가 만든 결과물을 전반적으로 다 수정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 나는 그 사람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을 뿐더러 그 말만 듣고 결과물을 다 바꾸는 것 자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사의 지시사항이 담긴 파일을 열어보는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터져나왔다.
"아니, 이렇게 다 바꾸면 어떻게 하자는거죠? 이게 맞는 건가요?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보고서 전체를 다시 쓰라니요? 그리고 이렇게 바꾸는 게 의미가 있는 건가요?"
말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는데 내 옆에 계시던 다른 분이 나를 조용히 데리고 나가셨다.
이 분은 내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상사의 지시가 완전히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라고. 배경은 이러했고, 그래서 이런 식으로 전면 수정이 될 필요는 없지만 일부가 보완이 되는 식으로 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한 마디 덧붙이셨다. 요즘 내가 햄버거를 자꾸 굽는다 하는데, 그렇게하면 마음의 불만이 절대 가라앉지 않을 거라고. 만약 어떤 일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다면 상사의 지시를 햄버거 굽듯 그냥 따르기보다는 대안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설득을 해 보는 게 좋을거라고 했다.
이 분의 말이 굉장히 와 닿았다. 어쩌면 햄버거 굽듯 지시를 따르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사실 불만을 갖기는 쉽지만, 그 지시에 대안이 될 만한 방안을 생각하고 그걸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는 일이니까. 나도 모르게 내가 덜 힘든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포기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생각하는 방안을 조금 정리를 해서 다시 말씀을 드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한 팀원들도 같이 생각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얼개를 잡아 두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팀회의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상사는 우리를 설득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자신의 지시사항이 있었던 배경을 다시 이야기해주었다. 나도 열심히 끝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햄버거를 굽지 않고 내 대안을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팀장님, 저는 팀장님을 따를 것이고 지시대로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팀장님의 지시를 무턱대고 그냥 따르기보다는 지시사항을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한 다음에 제대로 따르고 싶어서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눈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사도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니 배척하는 태도가 아닌 경청하는 자세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는 본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 때문에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 의견에 대한 다른 팀 사람들의 의견을 끝까지 다 듣고서는 결국 절충점을 찾아내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끄덕거리며 말했다.
"멋지신 분!"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나는 내 의견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느낀 순간 더 몰입해서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마음의 불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와 대립하는 사람이 아닌 같은 생각을 가진 '우리'가 된 순간 난 더 열정적으로 함께 일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생각을 맞춰 가는 과정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납득하지 않고 일을 하면 그냥 진행할 수는 있지만 마음의 앙금이 남게 되는 거였다. 그렇지만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로 설득하고 경청하기만 한다면 어떤 합의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합의점에서 시작하는 일은 납득되지 않은 상태로 하는 일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오늘도 또 하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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