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가 싫어진 이유

나였네?

by 서이담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


가 유치원까지의 대부분 엄마들의 바람이라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 부. 공부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아이를 대치동에 보낸다거나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부모는 아니다. 아니 그러지 않기로 합의한 쪽에 가깝다. 하지만 숙제를 다 하는 것은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이라는 쪽에서 끝까지 하게끔 시키고 있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들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까진 이상적인 생각이고, 현실은 또 다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친 적이 있다. 자꾸만 딴짓을 하려는 아이를 달래다가 속에서 열불이 났다. 결국 포기하고 신기한 한글나라라는 학습지를 찾아 가르쳤다.


그 이후로 내 역할은 뭔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기보다는 보조교사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역할도 점점 소홀해져만 갔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에게 영어는 가르쳐야겠다 싶어 학원엘 보냈는데, 학원 진도가 너무 빨라 흥미를 가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학습지 선생님으로 바꾸고 1년 가까이 학습지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점점 혼자서 숙제를 할 줄 알게 되자 나도 손을 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숙제를 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가관이 아니었다. 한쪽 발은 책상 위에 가 있고, 눈으로는 만화책을 보면서 영어 음원만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정해진 진도만 끝나면 체크하고 다 했다고 하는 식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숙제를 제대로 하는 습관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지적할 게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재민아. 끊어 읽어야지.”

“재민아, 그 발음은 그게 아니야. 다시 말해봐. “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써야지. 지우개로 지워.”


내 말투는 점점 명령조에 가까워졌고, 아이의 얼굴은 거의 울기 직전이 되었다. 그렇게 아이는 나와 숙제를 하기를 점점 싫어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아이가 숙제를 하면서 어떤 문장을 읽는데 발음이 꽤 괜찮았다.


“오~ 잘하는데?”


찌푸리고 있던 아이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펴졌다.


“이건 완전 쉽지~”


금세 의기양양해졌다.


‘이거구나!’


나는 다음 장에서도 아이가 잘하는 구석이 있으면 조금 과하게 칭찬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또 행복해하면서 숙제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아이는 내 퇴근시간을 기다렸다가 내가 오면 같이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숙제를 하면서 내 칭찬을 계속 듣고 싶어 하는 게 느껴졌다. 발음도 점점 좋아지고, 속도도 붙었다. 일주일에 한 번 오시는 영어선생님께서도 숙제를 너무 잘해왔고, 이해도도 높아졌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돌아보니, 아이가 영어 숙제를 미루고 싫어했던 건 어느 정도 내 탓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방관했고, 나중엔 싫어지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스스로 크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면은 틀린 것 같다. 스스로 크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부모의 따스한 시선과 격려는 무럭무럭 받고 자라야 더 쑥쑥 클 수 있는 거였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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