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의 자세
몇 달 전, 교회 성가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노래 부르는걸 참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터라 성가대에 들어가고는 싶었는데 교회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성가대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권해 주시는 분도 계셨고 또 남편이 일요일마다 연습으로 먼저 나가야 하는 나 대신 아이를 챙겨서 교회에 가는 수고를 덜어줄 수 있다고 양해를 해주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닌 지 1년이 된 즈음 성가대에 들어갔다. 처음 몇 달은 원 없이 노래를 부르고 또 화음을 맞춰간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나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씁… 음이 안 맞는데.”
성가대에서 합창을 하면 할수록 주변 사람들의 부족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성가대에 나이가 많으신 장로님, 권사님들의 음이 떨어지거나 박자가 맞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이런 점이 거슬렸다.
어느 날, 나는 뒷자리에 계신 장로님께 악보의 한 부분을 콕 집어 이 음이 틀렸다고 말씀을 드렸다.
“장로님, 이 음. 파가 아니라 라에요.”
“응. 라. 나 안 틀린 것 같은데?”
“오. 그래요? 근데 다른 음이 들려서요.”
한번 더 연습을 해본 뒤 장로님이 내 어깨를 툭툭 치셨다.
“여기가 틀렸다는 거지? 연습해보니 내가 다르게 불렀네. 고마워.”
“아이고 뭘요. 아니에요~”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기분이 찜찜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내 옆에 있는 권사님도 파샾 음을 파로 내시는 걸 알게 됐다.
“권사님~ 요 음 파가 아니라 파 샾이에요.”
“아이고 그렇구나. 이거 어렵네.”
“한번 같이 해볼까요. 아~~”
“아~~. 안되네. 에잇 포기해야겠다. “
연습이 다 끝나고 성가대석으로 올라갔다. 그날은 연습이 무색하게도 내가 했던 것들 중에 제일 합이 좋지 않았던 합창이 나왔다. 내 뒷자리에 계시던 장로님은 자신 없어하시며 잘못 불렀던 음을 아예 부르지 않으셨고, 옆자리 권사님도 틀린 음을 계속 틀리게 내셨다. 나는 악보에 있던 음과 똑같이 냈기 때문에 옆자리 권사님과 불협화음이 났다.
예배를 드리는데 마음 한 구석이 켕기면서 얼굴이 벌게져왔다. 단순히 찬양을 엉터리로 불러서 나오는 부끄러움은 아니었다.
성가대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름다운 성가를 완성도 있게 부르는 것이 목적일까. 아니다. 그건 하나의 부분일 뿐이다. 내가 돈을 받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도 아니지 않은가. 성가대라는 자리를 지키고 신을 찬양하는 것, 그 자체가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나는 그 성가대를 이끄는 지휘자가 아니라는 거였다. 나는 알토 구성원 중 한 사람이었다. 지휘자가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내가 뭔가 지적을 한다는 게 오히려 화합을 해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게 맡겨진 역할을 잘하는데 더 집중해야겠다. 나머지는 지휘자님 뜻에 맡기자.’
다음주가 되어 나는 바뀐 마음가짐으로 찬양에 임했다. 연습을 한창 하고 있을 때 내 파트에서 틀린 음이 들렸다. 그런데 아주 미묘한 차이였기 때문에 그 음을 잘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지휘자님도 별 코멘트가 없으셨다. 나는 생각을 바꿨다. 내가 똑바로 음을 내면 불협이 만들어지므로 나도 똑같이 틀린 음을 냈다.
‘어라. 틀린 음이 나쁘지 않네?’
그리고 이 날, 찬양은 멋지게 끝이 났다. 멋지게 완성된 찬양처럼 내 마음속에도 한 가지 교훈이 새겨졌다. 내게 주어진 역할이 플레이어라면, 플레이어답게 내 역할에 충실하자고. 리더와 생각이 다를지라도 그를 따르고 맡기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