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서점을 찾을 때마다 집었다가 다시 놓는 책이다. 책의 겉과 속이 모두 마음에 들지만 왜 구입을 망설이는 걸까.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또렷이 대답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한 적이 있을 것이다. 요즘엔 유명(연예)인들이 혼자 사는 일상을 관찰하거나 일반(의뢰)인의 집을 구해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많아져서 남의 집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떤 집은 말 그대로 ‘넘사벽’이어서 마음이 저릿해지고, 어떤 집은 ‘판타지’여서 마음이 쫄깃해진다.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을까. 평생을 도시인으로 살아왔으니 깊은 산속의 ‘자연인’이 살 법한 황토집이나 통나무집은 무리다. 인적 끊긴 계곡은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오싹할 것 같다. 기왕이면 바다가 있는 도시면 좋겠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다가 나오는 조용한 곳에 집을 구하고 싶다. 굳이 지을 필요는 없다. 집을 짓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익히 보아왔다. 책을 만들어 밥을 먹고 사는 자이니 책을 만드는 작업장이 있으면 좋겠다. 작은 서점을 붙이는 것도 좋겠다. 내가 먹고 자고 씻는 작은 방이 딸려 있어야 할 테고, 대문에서 걸어 들어올 수 있는 작은 마당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 집에 살던 주인장이 잎이 무성한 나무 몇 그루쯤 미리 심어놓으면 좋겠다. 하늘을 날아 동네를 지나던 새들을 부르고, 그 아래 ‘스노우피크’ 캠핑 의자를 두고 오후를 식히면 좋겠다. 담 아래 무심하게 들꽃이 피면 한 움큼 꺾어 테이블에 두고 인스타그램에 ‘오늘 서점 문을 열었습니다’ 인사를 건네기를 바란다.
방은 철저히 미니멀리즘일 것이다. 음악을 듣는 도구와 몇 권의 책, 작은 냉장고, 소박한 다기(茶器) 세트, 맥북이 전부인 공간. 다락이 있다면 무인양품 수납장을 놓고 속옷과 양말을 둔다. 주방은 서점에 심플한 바를 만드는 것으로 대신한다. 무엇을 먹든지 ‘한 그릇’ 요리로 번잡함을 던다. 서점을 찾는 손님에게 따뜻하고 진한 드립커피를 제공할 수 있는 간단한 커피 도구를 놓는다. 적당한 커피 기계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내 마음에 ‘저장’한 커피 머신은 취리히에서 생산되는 ZURIGA다. 근사하다. ZURIGA 공식 인스타그램을 보면 즐거워진다. 눈이 호강한다.
조선의 실학자 성호 이익의 조카인 혜환 이용휴(1708-1782)는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산문선에서 도성 안에서 외지고 조용한 곳을 택해 몇 칸짜리 작은 집을 짓고 방 안에 거문고와 책, 술동이, 바둑판만 놓고 살고 싶다고 적었다. 건축가 유현준은 ‘집’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그 집에 사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결국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라는 질문은 ‘당신은 당신을 좋아하나요?’라는 물음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그 제목을 품은 책을 읽지 않았다. 오호, 통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