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동희 북노마드 Jun 09. 2021

to do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나에겐 크게 두 가지 부류의 주변 사람들이 있다.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나 이웃사촌처럼 책을 만드는 일과 관계없는 지인들과 책으로 얽힌 지인들이 그들이다. 아무래도 평소에는 책과 엮인 지인들과 카톡을 주고받는다. 여기에서 ‘카톡을 주고받는다’라는 문장은 상당히 중요해서, 이것은 카톡으로 거의 모든 대화가 이루어지는, 다시 말해 굳이 ‘소통’으로 연결시키고 싶지 않아 하는 시대 풍경을 담고 있다. 


아무튼 그러다가 가끔 책과 관계없는 지인들이 ‘카톡’을 걸어올 때가 있는데, 이 경우는 십중팔구 어디에서 내 소식을 들었다거나, 지인이 책을 내려고 하는데 내줄 수 있느냐 등이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최근에는 책을 만드는 일과 관계없는 지인들의 연락이 잦아졌다. 주식, 아니 주식에 관한 책 때문이다. 물론 오십 줄에 접어든, 그래서 주식 구력이 족히 20년을 넘는 선배와 친구들이 ‘주린이' 책을 살 리 없다. 그런 그들마저 주식 책을 기웃거릴 정도로 작금의 출판 시장은 ‘단타 매매'를 노리는 주식 책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카톡으로 묻는다. (1) 요즘 주식 책이 많이 나간다며?(너도 돈 좀 벌었겠네) (2) 사람들이 ‘집콕'하며 책을 많이 읽는다며(걱정했는데 다행이네). (3) 너도 주식 책을 내! (4) 왜 주식 책을 안 내?


일단 출판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알듯이 코로나가 만들어낸 언택트 세상 속에서 출판 시장은 줄어들지 않았다. 교보문고와 예스24가 내놓은 2020년 통계를 살펴보면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독서에 관심을 가졌다. 2020년 한 해 동안 두 메이저 서점의 도서 판매량은 2019년 대비 23%(예스24), 7.3%(교보문고) 늘었다. 사람들이 집에 머물면서 쿠팡과 마켓컬리와 배민과 무신사와 에이블리와 당근마켓과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소비했듯이 온라인 서점도 더 많이 방문한 것이다. 때마침 박근혜 덕분에 ‘손쉽게’ 정권을 거머쥔 정부가 ‘손쉽게’ 부동산을 말아먹으면서 온 국민이 부동산과 주식 전문가가 되면서 주식 책이 팔리고, 쿠팡에서 (집에 있는 아이를 위한) 색종이가 날개 돋친 듯 팔린 것처럼 아동용 도서가 뒤를 이었다. 예스24에서는 투자/재테크 도서 판매량이 2019년 대비 118.2% 증가했으며, 그중에서도 주식/증권 분야 도서 판매량은 202.1% 급증했다. 


실제로 교보문고의 2020년 온라인 판매량 비중은 64.8%로 크게 늘었다. 온라인 채널에서 모바일 채널 판매량과 인터넷 채널 판매량이 2019년 대비 32.9%, 20.1% 증가했다. 예스24에서는 대학 교재 판매량이 2019년 대비 두 배(100%) 늘었고, 개학이 미뤄지고 학원도 휴원해서 학부모들이 자녀를 교육하면서 홈스쿨링 도서 판매량이 증가했다. 예스24에서 부모의 아이 양육법을 다룬 도서 판매량과 청소년 공부법 도서 판매량이 2019년 대비 13.6%, 78.9%, 교보문고에서 초등학습과 중·고등학습 분야 도서 판매량이 2019년 대비 31%, 24.2%, 예스24에서는 어린이 문학과 청소년 문학 판매량이 2019년 대비 12.7%, 55%, 교보문고에서는 청소년 소설이 2019년 대비 113.1% 증가했다. 


물론 통계일 뿐이다. 해당 분야의 도서를 만들지 않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의미 없는 숫자다. 데이터의 이면을 살펴야 한다. 나는 2020년 예스24 100위권 도서의 판매 부수가 2019년 대비 9.1% 감소했다는 통계에 시선을 둔다. 전체 매출은 증가했지만 종합 1위의 판매 비중이 줄어들고, 자기계발, 경제/경영, 소설, 아동 만화 등이 골고루 인기를 얻었다는 말일 테다. 물론 서점에겐 상관없는 맥락이다. 유통 마진으로 운영하는 서점 같은 유통 채널은 『82년생 김지영』 같은 압도적인 베스트셀러가 나오건, 한순간 1위를 찍고 내려오는 송가인 책이 나오건, 다양한 도서가 순위에 포진하건, 정세랑이나 이슬아 같은 스타 작가가 나오건 시장 사이즈가 커지면 좋은 일이다. 


출판사는 다르다. ‘다양한’ 책이 판매된다는 것은 그동안 소설과 에세이에 집중하던 20~40대 여성 독자들이 주식 책까지 관심을 보인 덕분이고, 게임에 몰두하느라 책과는 담을 쌓았던 20~30대 남성들이 어쩌다 주식 책을 산 덕분이며, 코로나로 오랫동안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부모가 자녀용 아동 만화를 구매한 일시적 변화일지도 모른다.  


본래 출판사는 다양한 책을 만들어왔다. 특정 출판사가 한두 가지 장르에 주력해도 합쳐놓으면 다양해지는 게 출판 시장의 속성이다. 따라서 출판 시장이 다양해졌다는 것은 모든 책의 평균 판매 지수가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SNS에서 화제를 모으고, 해당 분야에서 상위권 순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책이 이제 1만 부를 넘겼다"고 토로한 어느 출판사 대표의 말처럼 절대적으로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는 베스트셀러의 기준을 바꾸어 놓고 있다. 


그 추세는 해가 갈수록 극심해질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수개월 동안 온오프라인 서점의 눈에 띄려면 적지 않은 광고비를 써야 한다. 책보다 파괴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온라인 공간에서 한 권의 책이 화제를 모으려면 조상의 은덕을 입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른바 마케팅 비용과 해당 책에 출판사가 공들인 시간과 노력을 대입하면 이익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물론 그래도 팔리는 책은 소중하다. 출판사 브랜딩에 도움이 되고, 현금 흐름을 돕는다. 큰돈이건 푼돈이건 현금이 중요하다. 하지만 출판사도 하나의 유기체여서 판매 지수와 현금 흐름이라는 ‘피지컬’만으로 버틸 수 없다. 출판사를 구성하는 것은 결국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사람’이어서 기계처럼 동일한 에너지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마음과 저 마음이 들락거리는 인간 성정의 특성상 여러 감정을 소비하게 된다. 가까운 출판사 대표의 고백처럼 “고작 이것을 위해 열심히 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친다. 소진된다. 당연하다. 사람이니까,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어디 사람만 변하나. 통계라는 수치는 어떠한가. 객관적으로 보이는 데이터야말로 해마다, 분기마다, 달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 두 가지 뿐이다. 내가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이상 나를 둘러싼 지인이 책과 관계있거나 무관한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변(화)하는 흐름에 맞출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하며 깨달은 결과, 나는 변(화)하지 않는 것에 마음을 두면서 그곳으로 향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단어를 붙이거나 머릿속에서 분류표를 붙이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거나 손에 쥘 때, 그리고 그것의 있는 그대로를 허락할 때 삶에 깊이가 돌아온다"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마음에 품으면서도, 사물과 사람과 상황에 말이나 머릿속 분류표를 재빨리 붙이는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의 현실이 하루하루 더 얕아지고 생기 없는 이유는 순전히 나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세상의 변화에 시의 적절하게 대처하는 영민함이 부족한, 굳이 통계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전 국민이 피부로 체감하는 코로나로 인한 출판 환경의 변화를 알면서도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한 나에겐 정형화된 스타일에서 탈피해 각자의 방식으로 탄력적으로 변화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나의 우중충한 패션을 늘 안타까워하던 가까운 지인은 ‘있어빌리티’ 패션을 소비하던 사람들이 불황이 지속되면서 럭셔리 패션으로부터 거리를 두며 새롭게 찾은 브랜드에 관심을 두고 있다며 나에게 ‘메종 키츠네’의 옷을 권했다. 그리고 한 단어를 힘주어 말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일한다’는 것은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제시하는 ‘대안적인’ 브랜드를 찾는 것이라고. 그날, 나는 서점에서 메종 키츠네를 다룬 매거진을 구입하여 메종 키츠네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들으며 읽었다. 아니, 학습했다. 


물론 메종 키츠네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패션을 이야기할 지식이 내겐 전무하다. 패션을 아는 척 한글 어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패션 매거진식 글도 좋아하지 않는다. 오글오글…… 그럼에도 메종 키츠네가 보여준 것처럼 오늘날 쿨하고 힙한 브랜드는 자신의 본래 정체성을 뛰어넘는 무엇인가를 갖추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특히 자신이 소비하는 브랜드가 자신이 속한 사회나 집단을 대변하는 인덱스로 기능하길 원하는 밀레니얼-MZ세대에게 소구하려면 사회적, 문화적 소속감을 안겨주는 시그니처가 있어야 한다. 이제 젊은 소비자들은 자기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공간에 가는지,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브랜드를 소비하니까 말이다.


그날 밤, 내가 학습한 매거진과 곁들여 읽은 브랜딩에 관한 책들은 그 해답으로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단어를 내놓고 있었다. 물론 기성세대가 알고 있는 그 라이프 스타일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 이전 저가 항공을 타고 베를린 클럽에서 파티를 즐기고, 런던에서 쇼핑하고, 아시아를 여행하던 유럽 젊은이들처럼 서로 다른 문화 코드가 혼재한 ‘스타일’일 수도 있고,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결이 다른 문화를 클리셰 또는 올드하다고 단정 짓는 ‘세대 격차’일 수도 있고, 자본에 적극적으로 구애하면서도 예술가의 소신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달라진 문화 패턴’일 수도 있으며, 아방가르드 스타일과 친환경적 윤리적 가치를 결합시키는 ‘새로운 공정과 정의’일 수도 있다. 제아무리 거대하고 유명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를 지향하며 변화를 시도하는 크리에이터가 되지 않으면 인플루언서 한 명을 이길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나보다 트렌드에 민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정리하자. 선택하자는 것이다, 결정하자는 것이다. 적어도 한 방향을 정해놓고 걸어보자는 것이다. ‘배달의민족’ 김봉진 대표가 모교 수도공고를 찾아 후배들에게 건넨 메시지가 기준이 될 것 같다. 


- 살면서 중요한 부분은 ‘나’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 내리는가입니다. 스스로 ‘나’를 정의 내리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 의해 정의 내려집니다.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는 자기 스스로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봄날의 주말, 스타벅스에 앉아 맥북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갓 도착한 뉴스레터에 들어 있는 그의 말에 밑줄을 그었다. 그를 만난 적은 없지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변(화)해야 하는가? 이 물음 앞에서 주저하던 나에게 그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한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변화'를 생각하는 건 지금 하는 일이 주춤거리고 있다는 신호다. 김 대표의 말처럼 “살다 보면 계획과 다르게 안 될 때도 많고, 반대로 계획과 다르게 잘 될 때도 많을 것”이다. 그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잘 되면 나 때문이고, 안 되면 세상과 남을 탓한다. 그것을 벗어나려고 고민하고 노력한다. 여기를 기웃거리고 저기에 발을 걸친다. 그 시도와 노력을 변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김 대표의 말처럼 힘든 시기일수록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기를 잠자코 기다리는 게 인생의 이치라는 생각이 든다. 힘들수록 어제까지 하던 일을 오늘도 묵묵히 하는 것. to do. 새삼 이 말의 의미를 곱씹는다. 


- 꾸준히 무언가를 하다 보면 거기서 순간적으로 어떤 게 떠오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건 없어요. 뭔가를 계속 하고 있어야만 해요.(김봉진)



작가의 이전글 느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