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책과 관계되는 일을 맡게 되다.
‘강제’라는 단어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나 자신조차 내 맘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다 보니 가끔은 꼼짝달싹 못할 외부 압력이 필요하다. 최근에 읽은 불교 관련 책에서 중생의 삶은 기분 좋은 상태를 추구하기 위해 움직이기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일개 중생인지라 즉각적으로 도파민이 나오는 것에 몰두하다 후회하기 일쑤다
30대 초반 난데없이 밀가루 알러지가 걸렸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을 느꼈지만 강제 식단 조절은 나의 무서운 식탐에도 불구하고 일정 몸무게 이상 늘어나지 않는 선물을 안겼다. 친한 친구가 “야~ 그 알러지 은근히 탐나는 병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독서치료실에 와보니 가장 좋은 점은 강제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쁜 업무로 집에서 읽어야 하기에 엄밀히 말하면 초과근무수당 없는 야근이지만 오히려 좋다. 물론 ‘강제’라는 단어에는 ‘고통’이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살이 안 찌는 데 도움이 된다지만 20대까지 즐기던 라면, 빵, 피자 등을 못 먹는 고통은 여전히 끔찍한 것처럼 말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부담감은 빨리 읽기 위한 레이저가 눈에서 뿜어져 나와 읽는 속도를 높였다. 물론 쫓기듯이 봐야 해서 내용을 깊게 못 본다는 점, 흥미가 없는 책을 꾸역꾸역 봐야 하는 점이 문제지만 그래도 좋다.
강제 책 읽기 고통은 나에겐 감내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예전에는 내가 선호하는 책만 읽으면 나만의 세계에 갇힐 것 같아 다양하게 읽어야지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는데 이 강제 숙제로 인해 나의 독서 폭이 넓어지고 있다. 또한 무엇을 읽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점심시간에 뭘 먹을지 고민하느니 구내식당에서 알아서 주는 것을 선호하는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나에겐 안성맞춤이다. 무엇보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눕고 싶을 때 강제로 책을 펼칠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독서치료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그렇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하나 궁금해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온 지 한 달도 안 된 나도 잘 모른다. 일시적인 현상인지 이렇게 계속 쫓기듯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도 확신할 수도 없다. 막연한 불안감을 품고 일단 당장 내 손에 떨어진 업무를 해결할 뿐이다.
우선 ‘이럴 땐 이런 책’이라는 책 추천 코너가 있다. 어린이, 청소년, 성인 파트가 있는 데, 나는 성인을 대상으로 상황별 도서 매달 2권씩 추천해야 한다. 독서치료실에 소장 중인 책 중에서 최신 책으로 위주로 추천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예전에 읽었던 책을 우려먹을 수가 없다. 매달 진행되는 독서회 선정도서도 읽어야 한다. 독서치료 관련 수업 프로그램 교육을 위해 주제 도서를 읽어야 한다. 도서관 소식지에 들어갈 사서 추천도서 서평 작성도 해야 한다.
‘강제 책 읽음’이라는 나에게는 행복한 고통도 누군가에게는 리얼 고통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헬렐레’ 하며 앉아있는 이 자리도 책에 큰 관심이 없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꺼려 하는 사람은 손사래를 치며 저 멀리 도망가는 것처럼 말이다.
도서관 리모델링을 할 때 가구 구입과 각종 사인 구축을 담당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와서 이런 말을 했다."이것저것 사고 고르고 꾸미는 거 재미있지 않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렇게 재미있으면 본인이 하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사실 나는 인테레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내 집조차 잘 꾸미지 않는다. 사서 중에서는 개인적인 관심으로 인테리어 공부를 하시는 분도 있으니 적성을 반영한 적재적소 인사가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희망 보직은 묘하게 쏠림 현상이 있으니 적재적소 인사란 닿을 수 없는 파랑새 같은 이상적인 꿈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그리 인기 있는 자리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책 출간’이라는 미끼와 ‘잘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거짓말, 그리고 약간의 운이 더해져 이 자리에 입성했다. X 누러 갈 때 마음 다르고 올적 마음 다르다고, 막상 와보니 생소한 업무가 많아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잘 할 수 있다더니 전혀 아니네?“라는 실망스러운 말들이 벌써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잘하려고 애쓰지는 마음을 내려놓는다면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이든 마음수련이 관건이다.
‘뭐 어쩌겠는가 내 능력이 이만큼 밖에 되지 않는데...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다.’
노력하는 자가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항상 상기해야겠다.
20년 도서관 생활 동안 돈 받고 하는 일은 다 힘든 거라는 전제하에 모든 일은 ‘견딜만한 일’과 ‘견딜 수 없는 일’ 이렇게 두 가지로 구분해 왔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지만, 스치듯 찰나의 기간이다. 그보다 ‘이러다 나 죽겠네’하며 시들시들해질 때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독서치료실에 와보니 내가 예정하는 책과 관련된 일이라는 점, ‘독서치료’라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나를 설레게 한다. 돈을 받고 설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직은 꿈만 같다. 물론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는 의문이지만, 찰나라도 이런 마음이 들었다는 게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