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치료실에서 제가 먼저 치료되고 있어요.

효과는 내가 먼저!

by 라온써니

독서치료실에는 여러 도서관 사서들이 모여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타 도서관과 학교에 배포하는 업무가 있다. 나는 올해 발령으로 작년 프로그램 개발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작년 개발 위원들이 만든 프로그램에 대해 올해 운영하는 기관을 대상으로 가이드 연수를 해야 한다.


나도 이제 발령받아 교육을 받아야 할 판에 다른 사서를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니, 이게 뭔 날벼락인가 싶었다. 프로그램 소개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주변 사람들은 말했지만, 내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익히는 것과 운영자에게 가이드 수업을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놀란 마음을 누르며 일단 프로그램 주제 도서부터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행본 4권, 그림책 4권이었다.


이 부담스러운 숙제가 뜻하지 않게 나의 눈물 콧물을 쏙 빼며 어느새 나를 치료해 주고 있었다. 독서치료 프로그램 운영 가이드 수업에서 치유받은 나의 생생한 간증보다 더 필요한 게 있을까? 교안은 아직 살펴보지도 못했지만, 독서치료 전도사의 마음이 장착된 나는 가이드 연수인지 뭔지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이렇게 마음 치유 효과를 보았습니다. 효과가 임상적으로 검증되었다고요!!”


문득, 평소 얼마나 마음이 약해져 있었으면 이렇게 쉽게 효과가 나타나나 싶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문기관에서 받은 성격검사에서 인내심이 낮고 불안도가 높다는 판정을 받았다. 즉 나는 공식적으로 참을성 없는 인간으로 인정된 사람이다.


목이 너무 마르면 물 몇 방을 만으로도 세상 살 것 같은 그런 느낌과 비슷한 것일까?

어쨌든 난 약발(독서치료)이 잘 받는 사람이니 이 자리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로 했다.

역시 세상일은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구나.


최근 읽은 책 중 나에게 효과를 나타낸 구절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인생의 모든 일은 하나의 방향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


“지적인 힘이 부족하면요, 자신의 불행을 크게 해석하게 돼요. 돈 없고 서럽고 눈물 날 때는 반드시 공부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짧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결국 걸었기에 길이 됐고, 살았기에 삶이 됐음을 느낍니다.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이미 받은 많은 선물을 기억하며 그것에 감사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갖지 못한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이 훨씬 많은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오늘부터 다시 스무 살입니다./ 김미경 외 30인 지음 /블루 웨일


책을 읽으며 저자 30인의 다정한 목소리가 나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울고 있는 나에게 괜찮다고 다독여 주었다. 그런데 책 속에는 내가 느끼기에는 이게 정말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사연들이 많았다.


정인은 제아가 제 말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다. 다른 세상에 사는 그 애가, 다른 공기를 마시는 그 애가, 부디 정인이 하는 단어를, 문장을, 말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기를.


클로버/나혜림/창비


나는 사연을 읽으며 글을 쓰신 분들의 단어를 문장을 말의 무게를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를 짓누르고 있던 걱정이 갑자기 소소해 보이면서 나의 불만은 어린아이의 투정같이 느껴졌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삶을 개척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삶의 고통을 인내심을 가지고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보며, 견디다 보면 좋은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 내고 있었다.


뜬금없이 노래 하나 소개하겠다.


사랑은 ~ 언제나 ~ 오래 참고 ~

사랑은 ~ 언제나 ~ 온유하며 ~

사랑은 ~ 시기하지~ 않으며 ~

자랑도 ~ 교만도 ~ 아 ~ 니 하며 ~

사랑은 모든 것 감싸주고 ~

바라고 ~ 믿~ 고 참아내며 ~

사랑은 ~ 영원토록 ~ 변함없네 ~


존스 홉킨스 대학의 지나영 교수가 운영하는 유튜브에 사춘기 자녀교육 강의에서 불러주신 노래다.

사랑의 가장 첫 번째가 바로 “오래 참고”였다. 지나영 교수는 자녀에 대한 인내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전에 무심코 흘러들었던 노래에 이렇게 심오한 뜻이 있다니 깜짝 놀랐다. 참을성 없는 나의 머리를 띵~ 하고 때려주었다.


‘쩝,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인내’로군‘


사춘기 딸을 대할 때도, 나를 대할 때도, 인생을 대할 때도 일희일비하지 말고 우직하게 정성을 다해 가는 게 인생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업무를 위한 읽기 숙제와 어쩌다 들은 유튜브는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 얽히고설킨 나의 마음을 서서히 풀어주었고. '독서'와 '치료'라는 두 단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아 참, 이 노래는 기억해 주었다가 나중에 독서치료 프로그램 개발할 때 써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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