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처를 부드럽게 표현해야 하는 데.....
어제는 남편의 사소한 말투에 상처를 입었다.
남편은 ISTJ다.
우연히 ‘부족한 공감 능력을 상쇄시키는 탁월한 문제해결력’이라는 ISTJ의 특징을 읽으며 MBTI이 신뢰도가 급속하게 상승했다.
연애할 때는 모든 면이 좋아 보이나 결혼하여 살다 보면 몰랐던 단점에 당황하게 된다.
성질도 냈다가 포기도 했다가 수많은 지랄과 시행착오를 거치면 장점에 붙어있는 단점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남편도 나를 바라보며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싶다.
빛과 어둠이 한 쌍인 것처럼 장점은 일정 양의 단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어떤 포인트에서 계속 상처받고 화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하질 않나.
다행스러운 건 예전에는 일어나는 감정에 편승하여 날뛰었다면 최근에는 요리조리 생각해 보고 올라온 감정들을 조금 누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좋은 점이 나타나면 언제 화났는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남편이 딸에게 잔소리하면 딸은 아빠의 말 톤의 정도에 따라 자신의 대응 방식도 달라진다.
“야. 이것 좀 치워라.” 하고 짜증 투로 말하면 그에 알맞은 어투로 “알았어, 알았다니까.”로 대응한다.
딸의 짜증 투에도 아빠는 별 반응 없이 넘어가며 대화 후에는 아빠와 딸은 감정적 동요 없이 일상생활로 돌아간다.
나 같으면 기분 나빴을 것 같은데 서로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신기하다.
나는 센 말투에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싫어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소소한 공격에 순간적으로 받아치는 순발력이 부족하여 억울하다.
그렇다고 이미 지난 후에 화내기에는 너무 작은 건이다.
하지만 ‘착한 여자’는 없다고 차곡차곡 쌓였던 것이 별것 아닌 것에 폭발하여 상대방을 질리게 하기도 한다.
나의 MBTI인 ESTJ의 특성이 말에 상처를 잘 받고 선 넘는 것을 싫어하며 욱하는 기질이 있다고 한다. 나의 상처에는 상대방이 제공한 원인뿐만 아니라 그에 반응하는 내 기질도 한몫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처받는 포인트, 감동받는 포인트가 다르기에 각자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트러블이 생기는 것 같다. 이럴 때 나의 입장만 고집하면 한없이 억울할 수 있다.
직장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 초년생 시절 어떤 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인상이 너무 강해서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는 게 콤플렉스야. 그런데 샘은 너무 순해 보이는 게 문제인 것 같아.”
자기 하소연인 줄 알고 넋 놓고 듣던 나에게 생각지도 않은 화살이 날라와 내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내가 순해 보여서 만만해 보이나 하는 콤플렉스가 강해졌고 그로 인해 화를 차곡차곡 쌓아놨다가 폭발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회사에서도 한두 번 크게 폭발하여 힘든 뒷수습에 땅을 치며 후회한 적이 있다.
세파에 시달리고 나이가 들면서 인상이 더러워지기도 하고 나의 부드러운 면으로 손해보다는 이득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콤플렉스는 거의 사라졌다.
이득은 자연스러우니 당연한 듯 여겨졌고 손해만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콤플렉스가 없어진 가장 큰 이유는 나는 상처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별생각 없이 한 말이 누군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을지 누가 알겠나.
결점투성이인 인간의 나약함과 나도 모르게 뿌렸을 상처의 씨앗들을 고려하면 타인이 주는 상처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내가 감당해야 할 어쩔 수 없는 분량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성격 파탄자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들끼리도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단지 소중한 사람들 간에는 의사소통의 스킬을 높여 너의 이런 점들은 나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부드럽게 알릴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아예 참거나 ‘욱’하는 모 아니면 도의 나의 기질상 그 ‘부드럽게 표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고강도의 정신 수련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