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해외여행 안부러워요.^^
화요일부터 낸 휴가가 끝을 향해가고 있다.
아이가 고등학생이다 보니 장기간으로 어디 놀러 갈 수도 없어서 어차피 여름휴가도 안 낼 거다.
아이 기말고사 기간에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를 위해 밥, 간식, 시험 스트레스 하소연 들어주기 등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에게 조금의 보탬이 되고자 화~금까지 주말 포함 6일 휴가를 냈다
집콕 외에 별다른 계획이 없기에 장기간 쉬는 거에 대한 설렘은 있었지만 여행 가기 전 짜릿한 기대감 같은 것은 없었다.
5일 동안 아이 밥 세기 차려주고, 밀린 이불빨래하고 책 2권 읽은 게 다다.
처음 이틀 동안은 평소 각성되었던 마음의 연장선 인지 편히 쉬지 못하고 쉬는 동안에 뭐라도 해야 하나 싶어 계속 몸을 움직이며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3일째에는 한없이 게을러지면서 만사 귀찮고 잠이 끊임없이 왔다. 왠지 몸도 아픈 것 같았다.
바빠야 그 시간을 쪼개서 무엇이라도 하게 되는 거지 오히려 시간이 많으니 늘어지면서 게을러지는구나 싶었다.
자기 전에 불현듯 사무실 걱정이 떠오르며 불안에 휩싸여 잠을 뒤척이기도 했다.
4일째에는 각성되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새로운 모드에 진입한 것 같았다.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졌다. 보고 싶었던 대학 동창에게 안부 전화도 했다.
자주 전화하면 좋을 것을 무엇이 바쁘다고 그렇게 피곤해하며 미루었는지 모르겠다.
4일이 지나가니 직장 다닐 때가 아득해지면서 조금 떨어진 시각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 정말 바쁘게 살았구나, 열심히 살았구나. 애쓰고 있구나. 어떻게 그렇게 살았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데 무려 4일이나 걸렸는데 다시 직장에 복귀하면 또 정신없이 살아야 하나 싶어 슬퍼지기도 했다.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져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니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이 내가 만들어낸 고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이 잘못될까 하는 불안감, 잘하려는 욕심, 다른 사람의 시선 등 내려놓아도 될 것을 붙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3일째 쉴 때 잠까지 설치게 했던 일들도 '까짓것, 잘못되면 어때. 조금 망신 당하면 되지. 다 괜찮다'라는 대범한 마음까지 품게 되었다.
이렇게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나의 삶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40대 초반까지는 생각할 틈도 없이 정신없이 살았지만 40대 후반이 되니 삶을 전체적으로 조명하게 되었다.
이전 직장에서 독서치료 관련 일을 하면서 잠깐이지만 40대 이상을 대상으로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 60대 이상 퇴직자를 대상으로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모임을 한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인생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고 버릴지 어디에 집중할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죽을 때 과연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질지 생각해 보고 그것을 역으로 거슬러 현재에 적용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도록 노력만 하였다면 요즘에는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용기가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기에도 너무 짧은 것이 인생이라는 절실함을 깨달아 버린 이유가 크다.
직장의 걱정들, 남의 평판 등이 지금은 신경 쓰이고 중요해 보여도 퇴직 후 일이 주면 잊힐 것들이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되새길 수 있는 여유,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시간, 가족들 얼굴을 자주 보고 웃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것이 내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다.
집에서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할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에게 중요한 것들이 더욱 명료해졌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견디는 시간 속으로 다시 들어가겠지만 불필요한 것까지 짊어지면서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견디는 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고통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휴가도 좋지만 약간은 무료한 듯한 시간을 보내면서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리고 휴가 기간 동안 '위라클/ 박위, 다하지 못한 말/임경선'이렇게 두 권의 책을 보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물리적인 여행에 못지않은 정신적인 자극을 받았다.
타의로 보내게 된 집콕 휴가지만 어느 럭셔리 해외여행 보다 즐겁고 값진 휴가였다.
내일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