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중간고사 기간에 맞추어 낸 장기재직휴가 3일째다.
화~일까지 휴가....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후로 놀러 갈 수도 없어 휴가를 아이 시험기간에 맞추어 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다.
매일 한 시간씩 요가를 하고 아이 시험공부 하소연 들어주고(그러다가 싸울 뻔도 하지만 서로를 더 알아가는 과정이니 괜찮다.), 밥 세 끼와 간식을 챙겨주고, 책도 읽고 하루가 후딱 간다.
MBTI에서는 E라고 하는 데, 이렇게 가족이랑만 교류하고 집에만 있어도 좋은 걸 보면 아무래도 I인 것 같은데...
사실 기력 부족으로(무기력인가) 누구 만나기 귀찮은 지는 오래되었다.
그리고 집에 가면 아이 밥을 챙겨줘야 하니 여유도 없긴 하다.
만나야 할 것 같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들은 떠오르는 데 집에 있는 게 좋다 보니 이러다가 고립되는 거 아닌지 걱정이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직장 생활은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슬프다.
봉사정신으로 무장하여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견디는 시간의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데...
나의 시간이 아니라는 생각만 드는 슬픈 현실...
그러려니 하기엔 너무나 많은 견디는 시간들...
위라클 택시 배우 조여정 편에서 박위가 조여정에게 던진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조여정은 이렇게 대답했다.
"행복하다기보다는 뭔가 견디어야 할 시간이 대부분이잖아요
해내야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이고요.
나이 드니까 제가 뭔가 하고 싶어서 하는 시간 보다
책임과 의무의 시간이 훨씬 커지더라고요.
살다 보면 아주 순간적으로 별거 아닌데 맛있는 걸 먹어서 행복하다던지
아주아주 피곤한 날 일을 끝내고 집에 가는 데
'아 행복한데?'
그렇게만 느껴도 저는 만족해요.
뭐라고 생각하는지 정의 내리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행복은."
이렇게 답한 조여정에게 박위가 다시 질문했다.
"그럼 지금 삶에 충분히 만족하시는 거네요?"
"저는 만족해요
훨씬 안 좋을 때도 만족했고 만족도는 높은 것 같아요."
조여정의 답변을 보고 상당히 철학적이라고 생각했다.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간파한 답변이랄까?
정의 내리기 힘든 행복~ 견디는 시간이 많지만 잠깐의 행복이 있어도 그 삶에 만족한다는 것!
나는 감사할 것 천지인데 바라는 것이 많아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사실 주어진 삶에 불만족하다기보다는 조급한 마음, 불안, 욕심이 나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므로 기쁜 일이 생겨도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고 강렬하지 않은 것처럼, 안 좋은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히려 그때는 안 좋았던 일이 지나고 보면 다행스러운 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니 세상일에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어제도 잠들기 직전 잠깐 직장일 걱정에 휩싸인 적이 있다.
일할 때도 일 자체보다는 기한 안에 할 수 있을까 하는 조급함과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는 불안감이 나를 더 조여왔던 것 같기도 하다.
휴가 기간 시간 동안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겠다. 내려놓고 내려놓고 또 내려놓자.
나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자.
세상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의 괴로움의 원천인 집착!
집착에서 욕심과 불안과 조급함이 나오겠지.
내려놓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나이 먹는 것이 하나도 슬프지 않을 것 같다.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 열정은 덜 할지라도
내려놓고 지켜볼 수 있는 인내심, 흔들리지 않은 안정감과 여유는 나이 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조여정의 만족스런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