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수학 학원
드디어 이사를 왔다. 홍제동에서 거의 10년을 살다가 새로운 둥치를 트니 감회가 새롭다. 애 어릴 때 발 동동 굴리며 정신없이 살던 시절이 끝나고 새로운 삶의 국면에 접어든 느낌이다.
‘시간 정말 빠르구나~~ ’
집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수학, 널 응원해, 걱정 마! 잘하고 있어!라는 글자가 학원 창문 하나하나에 대문짝만 하게 새겨져 있다. 학원 창문을 열다 '널'자 나 '마'자 가 겹쳐지면 어떻게 될지 잠깐 상상해 본다.
''수학, 응원해.' 걱정 잘하고 있어' 뭔가 어색한데?'
창밖에 즐비한 학원과 독서실을 보니 여기가 목동이구나 실감이 난다. 오늘 딸의 수학학원 레벨 테스트가 생각나면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머니, 우리 학원에서 중학교 2학년까지 마쳤거든요. 목동 가시면 3학년 1학기부터 시작하면 될 거예요. 이 정도면 그렇게 진도가 늦지는 않으니 걱정 마세요.'
’걱정 마세요.‘라는 연희동 수학학원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는 듯했다.
’그 정도 진도면 걱정 없겠지.‘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다독인다. 올해 중학교 입학하는데 진도가 중학교 3학년이라니! 이게 연희동 학원에서도 중간 레벨이라고 하는데 최고 레벨은 도대체 어디까지 선행을 하는 것인가? 나는 결재에만 열심인 엄마라 요즘 교육 분위기가 어떤 건지 도대체 감이 안 온다.
테스트 예약을 위해 목동 수학학원과 통화해보니 테스트 결과에 따라 반 배정이 되고 상황에 따라 PT를 붙일 수도 있다고 했다. 헬스장도 아닌데 PT가 뭐지? 뭔 소린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올해 딸을 외고에 보낸 동료 직원이 선생님이 친절하고 자상하여 애가 즐겁게 다닐 수 있고 이 학원 때문에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멘트에 고민 없이 이 학원으로 결정했다.
솔직히 알아보는 게 귀찮기도 했다. 학원 정보를 얻으려고 '목동의 공부 잘하는 아이', '대한민국 상위 1% 교육정보' 등 온라인 카페에 가입했지만 귀차니즘 때문에 제대로 검색하지 못했다. 딴 세상 이야기인 것 같아서 집중도 되지 않았다.
레벨 테스트 결과와 상담이 두렵다. 애 실력의 실체를 보는 것도 그렇고, 학원비도 그렇고. 헬스장 PT는 비싸서 엄두가 안 나던데 도대체 수학학원 PT는 어떻게 되는 건지.
널브러진 이삿짐들로 어수선한 집을 뒤로하고 애의 손을 붙잡고 초조하게 학원 문을 두드렸다.
‘xx야, 시험 잘 봐라’
레벨 테스트를 보러 들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시험 보는 듯 떨렸다.
기다리는 동안 상담 선생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 xx 중학교로 보내시지 왜 그리로 보내셨어요. 거기가
실력이 더 좋은데요.”
“직장 동료 중에 그 학교 갔다가 고등학교 때 자퇴한 케이스가 있거든요. 아이들이 생활 격차나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부동산에서 주상복합 때문에 바지 바람 세다고 가지 말라고 했어요. 두 번이나 같은 조언을 들으니 절대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피해 가느라고 머리 많이 썼는데요. 우리 애가 공부를 그리 잘하는 게 아니라 걱정도 되고요”
“아니에요~ 저희 집도 그리 잘 살지 않은데 우리 애들은 그런 거 없이 잘 다녔어요.”
“그래요?”
누구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 그 사이 아이는 시험을 마치고 나왔다.
“어머니. 아이와 함께 이리로 와보세요.”
점수가 나왔나 보다. 떨린다.
“어머니, 이번에 중학교 2학년 1학기와 2학기 시험을 봤는데요, 쉬운 것만 맞고 어려운 것은 다 틀렸어요. 3학년 진급은 어려울 듯합니다.”
“아~ 그런가요?”
‘내 이럴 줄 알았다. 연희동 수학 선생님이 목동을 너무 쉽게 보셨나 봐.’
안 좋은 결과에 괜히 엄한 사람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려본다.
“지금 상황으론 2학년 1학기를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요, 정규반이 이미 한 달이 지나갔어요. 중간에 들어가셔도 되고 방학 집중 특강 2주짜리를 들으셔도 됩니다. 하루에 5시간씩 수업하고요, 2학년 1학기 2학기를 한 번에 마스터하는 과정입니다.”
“너 하루에 5시간씩 수업 들을 수 있겠니?“
학원은 딸이 다니는 거니 결정은 네가 하라는 눈으로 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이가 테스트 결과 때문에 실망했을까 걱정도 된다. 이사 오기 전에 이럴 경우를 대비에 딸에게 정신 교육을 단단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xx야. 목동 가면 성적이 낮아질 수 있어. 그런데 그건 네가 못해서가 아니야. 거기 애들은 엄마가 시켜서 울며 겨지 먹기로 한 거지. 지금은 네가 못하더라도 나중에 잘할 수 있어. 왜냐고? 그 애들은 이미 초반기에 지쳤거든. 너는 공부를 안 했으니, 하나도 안 지쳤잖아. 달리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야. 그리고 너 4학년 때 공부 하나도 안 하고도 교육청 수·과학 영재과정도 합격했잖나. 넌 할 수 있어 ”
애의 정신건강을 위해 맞는 말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교육을 했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에도 딸의 표정은 아주 밝다.
“엄마, 나 중간에 들어가면 친구 때문에 어색할 것 같아. 그냥 새로 시작하는 집중반 들어갈까 봐. 어차피 한번 배운 거니 2주 동안 쫘~악~ 훑고 새 학기에 3학년 과정 들어가면 될 것 같아.”
일리 있는 생각 같았다. 다시 상담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방학 특강은 2주 동안 매일 진행합니다. 수강료는 65만 원입니다.”
“네???? 육... 십... 오... 만 원이오?"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직원이 추천해 주었을 때 학원비를 물어볼 걸 후회가 되었다. 대형 학원이니 다 비슷할 줄 알았다.
“생각해 보고 다시 올게요.”
학원을 도망치듯 뛰어나왔다. 비굴한 느낌도 들었다. 남편에게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지금 수학학원인데 방학 특강이 2주에 65만 원 이래.”
“그럼 정규과정은?”
“아 참, 그거 안 물어봤네! 너무 정신이 없었나 봐.”
언제 나갔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다시 학원으로 들어갔다.
“그럼 정규과정은 얼마인가요?”
“정규과정은 일주일에 3번 2시간 반씩 수업하고 한 달에 38만 원입니다.”
‘한 달에 38만 원... ...’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특강은 목동 입회비라고 생각하고 쏘자.
“방학 특강 결재해 주세요.”
아까의 비굴함을 상쇄하듯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카드를 내미는 손은 떨렸다.
집에 도착하니 이삿짐으로 어수선한 집처럼 나의 마음도 제자리를 못 잡고 있었다. 피 같은 돈의 과다 출혈도 몸과 마음에 어지럼증이 생겼다. 목동 첫날부터 심상치가 않다. 내일은 영어학원 가야 하는데 또 무슨 일이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