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사이에 털 꼽아 놓으셨나요?
공공도서관 이모저모
도서관에는 자원 활동가 선생님처럼 내가 존경하는 좋은 분이 너무나 많지만, 사람은 원래 어둠에 끌리는 법, 재미를 위해 특이한(?) 이용자를 소개해볼까 한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할아버지가 복사기가 고장 났다며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셨다. 서비스센터가 문을 닫아 오늘은 고치기 어렵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갑자기 저 멀리서 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머리도 없으셔서 살색이 유난이 많이 띄는 낯선 남자분이 뛰어오더니 할아버지 발목을 잡고 엎드려 눕는 것이다.
“할아버지! 사실은 제가 복사기 고장 냈어요. 저 직원은 잘못이 없으니 혼내지 마세요. 대신 저에게 곤장(?)을 쳐 주세요”
할아버지는 예사롭지 않은 포스에 놀라 두말없이 도망가셨다.
힘든 상황에서 구해주신 고마운 분이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도 당황스러웠다.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딱딱하게 굳은 나의 얼굴과 그 와중에도 ‘파르르’ 떨리는 눈 밑 근육을 눈치채시고는 기분이 상하셨나 보다.
다음날 도서관 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비둘기 떼가 내 쪽으로 몰려오는 거다. “뭐지?” 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나를 구해주신 남자분이 “워~ 워~” 큰소리로 내며 내가 있는 쪽으로 비둘기를 모는 거다. 나를 째려보는 그분의 표정을 보고 헐레벌떡 도망갔다.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면 시트콤처럼 재밌는(?) 일도 많지만 분노와 짜증을 다스려야 할 때도 많다. 장기 연체자에게 독촉 전화를 하는 경우,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내 돈 안 갚은 사람이라면 과감하게 지랄(?) 하겠는데 이건 개인사가 아니니 최대한 공손하게 대해야 한다.
전화를 하다 보면 그냥 끊어버리시거나 화를 내시는 분 등 각양각색이다. 상큼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신 후 교통사고 나서 입원 중인데 중환자실(?)에 있어 반납할 수 없다며 연기해 달라는 분도 있다. 짜증이 천장을 뚫을 지경이 되다가도 여러 번 전화하게 해서 죄송하다며 택배로 연체 책과 함께 편지를 보내주시는 따뜻한 분들이 있어 다시 평정심을 되찾는다.
독촉하면서 기억에 남는 전화가 있다. 여러 번 통화했지만 계속 다른 분이 받아서 전달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사무실인 것 같았다. 몇 달 동안 반납이 안 되서 다시 전화했더니 받으시는 분이 화를 내는 거다
“내가 분명 말했는데 그 새끼가 반납을 안 했다는 거죠? 이 자식 가만히 안 두겠어. 내가 반드시 반납하게 만들겠어”
책 한 권 때문에 살인사건 날 기세였다. 너무 무서웠다.
“아하하하~~ 반납 안 하셔도 돼요. 수고하세요”
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결국 그 책은 내 돈으로 사서 메꾸었다. 도서관 생활을 하다 보면 선의(?)의 거짓말을 할 때가 많다.
거짓말을 하게 된 또 다른 이야기다. 어떤 분이 책을 반납하시면서 책장 사이사이에 털이 있어서 빼는데 고생했다고 전 이용자한테 꼭 전화해 경고해 달라고 하셨다. 전화해서 조치하겠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니고, “혹시 책장 하나하나에 털 꼽아 놓으셨나요?”라고 물어볼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았다. 며칠 후 확인차 오셨는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잘 말씀드렸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천만다행으로 그날 이후 털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도서관 업무 중 강좌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도 쉽지 않다. 어떤 강좌를 운영하고 어떤 선생님을 섭외할까 하는 큼직한 문제부터 신청자 문자 보내기, 강의실 안내 화살표 만들기 등 세세한 것까지 손이 많이 간다. 참가하시는 분에게 간식을 잘 분배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과자는 보통 종류별로 하나씩 가져가기 때문에 종류를 통일하기도 하고, 수량이 한정되어 있을 땐 대놓고 ‘하나씩 가져가세요’라고 붙이기도 하는데 마음이 좋진 않다. 강좌를 여는 입장에서 와주신 것만도 너무 감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낭에서 커다란 물병을 꺼내시더니 뒤에 비치된 음료 한 병을 콸콸~ 다 따르시고는 다시 배낭에 넣어 가시는 분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수업 끝나고 “좋은 강의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쪽지를 주셔서 당황하게 만드는 분도 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너무 좋은 나머지 얼떨떨해지는 순간이다. ‘아~네’하고 얼굴을 붉히며 쪽지를 받아든다. 나중에서야 “너무 감사합니다. 어떤 점이 좋으셨나요? 저도 사실 애를 많이 쓰긴 했습니다. 그걸 알아주시는 선생님은 진정한 저의 천사십니다” 요런 찰진 멘트를 팡팡 날리지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 어쨌든 쪽지는 내게 행복을 주었고, (순간이나마)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활활 타오르게 했다.
다양한 이용자는 나를 당황하게 한다. 책장 사이에 털을 꼽아서, 음료 한 병을 다 따라가서, 따뜻한 쪽지를 건네서 나를 웃게 하고 울게 만든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나의 파란만장한 도서관 생활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