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셔야 합니다. 안 나가시면 소등합니다!!

열린 공간으로서의 도서관

by 라온써니


배가 더부룩하다. 오늘은 6시부터 야간 근무를 해야 해서 5시 반에 밥을 먹었다. 도서관이 저녁 8시까지 문을 열기 때문에 직원 2명씩 조를 짜서 근무한다. 나는 어린이 자료실에서 6시까지 근무하고 2층으로 올라간다.


'오늘은 별일이 없어야 하는데... ...'


도서관은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오다 보니 특별한 사건 없이 하루가 가면 행운이라고 느껴진다. 2층에 도착하자마자 요주의 인물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다.


'아이고야~ 저분 또 오셨네!'


두 분이 눈에 거슬린다. 한 분은 이용 시간 끝날 때까지 남아 계시는 데 웬만해서는 나가지 않는다. 한 분은 간질 환자신데 도서관에서 발작을 일으킨 경험이 있어 불안하다. 내가 다른 도서관에 있을 때 매일 오셨던 분인데 이사하셨는지 우리 도서관으로 새로운 둥지를 트셨다.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났다.


“쿵”


가구가 쓰러지는 듯한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쓰러졌어요!”


누군가 소리친다. 직원이 응급 처치를 하러 간 사이 나는 119를 부른다. 다행히 119 구급차가 도착할 때쯤 발작은 멈추었지만 얼굴이 창백하고 땀에 흠뻑 젖어있다. 벽에 겨우 기대어 앉아 계시다. 응급 대원이 병원에 갈 것을 권유한다.


“선생님~ 안색이 안 좋으세요. 병원에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절대 안 갑니다. 제 병은 제가 잘 알아요.”


“그럼 보호자 연락처 주세요. 전화드리겠습니다.”


“보호자 없어요. 저 돈 없어요. 병원 절대 안 가요”


환자의 태도가 완강하다. 구급 대원이 여러 가지 체크를 한다. 다행히 양호한가 보다.


“그럼 댁까지라도 모셔드리겠습니다”


나보다 오래 있었던 직원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이분이 누나 연락처를 주어 전화를 걸었는데 누나가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했단다. 50대 중년의 나이에 아플 때 연락할 사람이 한 명도 없으시다는 게...


내가 그분 인생을 감히 상상할 수는 없겠지만 눈빛이나 옷차림으로 봤을 때 활력이 없고 불안해 보였다. 그리고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외로워 보였다. 이쯤에서는 가슴 아프다고 느껴야 하는 데 이상한 이용자를 많이 겪다 보니 나에겐 무섭고 짜증 나는 존재일 뿐이다.


그 당시 매일 오시던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분이 떠올랐다. 거의 5년 전인데도 얼굴이 생생하다. 덥수룩한 장발에 검정 뿔테를 쓰고 몸집이 크셨다. 엄청 부한 잠바를 입고 매일 엎드려 주무셨는데 큰 거북이가 책상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책을 대여섯 권씩 쌓아놓고 배게 삼아 매일 주무셨다. 얼마나 긴 시간을 주무시는지 가끔 코를 골아 깨워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무렵 이상하게 책 배열이 잘못된 데가 많아졌다. 공익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면서 시간을 주면 밝혀내겠다고 했다. 며칠을 서가에서 보초를 선 끝에 매일 주무시는 분이 가끔 깨서 서가를 어지르는 것을 잡아냈다. 거의 자면서도 잠깐 깰 때 책을 보는 대신 어지른 것이다.


단순히 재미로 그런 행동을 하신 걸까? 아니면, 외로워서 관심을 받고 싶으신 걸까? 그분 또한 노숙자 분위기와 악취로 나에겐 무서운 존재일 뿐이었다.


잠깐 예전 도서관 추억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오니 간질 환자분이 지나간다. 요즘에도 누나랑 연락 안 하시나? 갑자기 근황이 궁금해진다.


‘오늘은 발작을 일으키시면 안 되는 데... ’


불안한 마음에 30분에 한 번씩 가서 확인한다. 오늘은 다행히 발작이 없으셨다.


' 휴~ 다행이다.'


드디어 8시가 되었다. 역시나 한 분이 남았다.


“이용 시간 끝났습니다”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5분 더 기다려 본다.


“나가셔야 합니다.”


목소리에 힘을 준다. 미동도 없다. 1층 안내실 남자 선생님께 부탁드려야 하나 고민 중에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이 새로운 제안을 하셨다.


“내가 방법을 알아냈어. 불을 끄면 돼”


“네? 사람이 있는데 불을 꺼요?


“매일 저러는 데 어쩔 수 없잖아. 일단 5분 뒤에 소등한다고 말씀드리고 그래도 안 가면 불을 꺼 버리자고"


5분 뒤 소등한다고 말씀드렸으나 역시나 들은 척도 안 한다. 5분 지난 후 그분이 앉아있는 데서 먼 쪽부터 하나하나 끄기 시작한다. 꿈쩍도 안 하신다. 결국 완전 소등 후 1분 후 다시 켠다. 무대 조명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지 싶어 한숨이 나온다. 그제 서야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어머 효과가 있네! 이런 신박한 아이디어가 있나.’


평소에는 남자 직원이 큰소리를 쳐야 겨우 나갔었는데 큰 소동없이 해결되니 마음이 편하다. 나가면서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신다. 난 못 들은 척한다. 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또 뒤에서 인사한다. 또 무시한다.


내가 이렇게 왕싸가지가 된 되는 이유가 있다. 그분은 한번 인사를 받으면 하루에도 수십 번 와서 인사한다. 약간 정신장애 있으신 것 같은데 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로 와서 인사를 하니 직원들이 많이 당해서 그분이 하는 인사는 무조건 안 받는다.


7시 쯤에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복도에서 그분을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시는데 내가 딴생각하다가 무조건 반사로 고개를 까딱해버린 것이다. 그 잠깐의 고개 숙임 때문에 지금 수십 번의 곤욕을 겪고 있는 거다.


몇 번 무시하면 잠잠해진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한편으론 마음이 상해서 보복하면 어쩌나 무서운 마음마저 든다. 외로워서 관심받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오늘은 큰 민원이나 사건이 없어서 오는 발길이 가볍다. 내가 평소에 존경하던 선생님과 같이 걸어오니 기분이 더 좋다.


“선생님! 어떻게 불을 끄실 생각까지 하셨어요?”


“큰소리 내서 뭐 하게? 좋게 해결하려고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거지, 정신장애 있으신 것 같은데 갈데도 없을 것이고 엉뚱한 데 가서 누구한테 봉변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지. 다른데 안 가고 도서관에 하루 종일 있으니 가족은 얼마나 마음이 놓이겠어. 다행이지”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반겨줄 곳 없는 외로운 사람이 돈을 내지 않고 편안히 쉴 수 있는 최후의 공간이 도서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잘나든 못났든 늙었든 젊었든 장애가 있든 없든 간에 그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어렵지만 흥미진진한 실험이랄까, 도서관의 세계에는 그런 멋진 꿈이 있었다.


도서관 여행하는 법/임윤희


이 글을 읽고 내가 겪었던 다양한 이용자를 생각하면서, 도서관의 기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이한 분을 불편한 이용자라고만 느끼고 터부시했던 이유는 내가 매너리즘에 빠져 일하는 게 행복하지 않았기에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동료 직원을 보면서 특이한 이용자를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같은 상황도 새롭게 대처할 수 있음을 배웠다. 나도 좀 더 따뜻한 마음을 품어봐야겠다. 더 좋은 도서관을 위해, 무엇보다도 내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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