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는 사서 고생하는 건가요?
도서관에서 책 퇴출은 어려워~
‘사서는 사서 고생하는 직업이다.’
우리끼리 힘들 때마다 장난삼아 하는 말이다. ‘사서’ 하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도서관에서 우아하게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책과 관련한 프로그램이 많으니 책을 좋아하는 것이 업무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도서관 생활을 해보니 책을 좋아하는 것보다 중요한 자질이 많다. 그중 하나가 ‘체력’이다.
도서관에서 힘이 드는 일이라면 반납된 책을 서가에 다시 되돌려 놓는 작업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에 가보면 자원봉사자나 공익근무요원, 장애인 직업체험 등으로 도와주는 인력이 많다.
“요즘 도서관에 책 꽂아주는 인력이 많아 몸은 편하시겠어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당황하며 “반납하는 책 꼽는 것 말고도 할 일 많아요.”라고 서둘러 대답하지만 순간 여러 생각이 스친다.
‘서가에 책이 가지런히 꽂혀있으니 원래 항상 저런 줄 아는구나. 집안일을 며칠만 걸러도 아수라장이 되는데 저절로 항상 깨끗한 듯 느껴지는 거 하고 똑같네?’
하긴 도서관에 근무하면서도 자료실 담당자가 되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일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입사해서 처음 10년간 사무실에서만 근무했는데, 그 당시 잠깐씩 자료실에 지원 근무를 하는 것만으로는 운영의 고초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외부에서 모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마트에 새로운 물건이 차곡차곡 쌓이듯 도서관에도 새로운 책이 물밀듯 들어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작년 한 해 동안 우리 도서관에서 새로 구입한 도서가 만 이천 권 정도 된다.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이 서가 내 공간 확보다. 비워도 비워도 어느새 보면 책을 꽂을 자리가 없어 절로 한숨이 나온다.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과 같다.
서가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서가에서 이용률이 떨어지는 책을 선별하여 보존 서고로 보내야 한다. 이용자가 검색대에서 책을 검색한 후 ‘자료 위치:서고, 직원 문의’의 쪽지를 내밀며 “이 책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문의하면 얼굴은 웃지만 마음은 운다.
서고에 가서 찾아야 하는데 4층까지 올라가서 이동식 서가의 무거운 손잡이를 두 손으로 돌려 7~8개 서가를 겨우 이동하고 나서야 책 한 권을 겨우 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5분 후에 헉헉대며 책을 드렸다. 다른 책을 검색했는데 하필 또 ‘서고, 직원 문의’로 나왔나 보다. “죄송합니다” 하며 쪽지를 건네신다. 그분 잘못도 아닌데 미안해하니 나도 머쓱하다. 민망함을 피하기 위해 오버하며 활짝 웃는다. 눈 밑이 파르르 떨린다.
서고로 책이 이동되면 이용자도 컴퓨터 검색을 통해서만 접근이 되니 사서는 물론 이용자를 위해 정밀한 선별작업이 필요하다. 서고로 들어온 책 수만큼 서고의 책이 어디론가 나가야 한다. 도서관에서 영원히 방출되는 거다. 일부는 작은 도서관 등에 기증하기도 하고 활용이 어려운 책은 폐기되기도 하는데 외부위원이 포함된 불용도서 선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진행된다.
위원회에서는 도서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는 책들을 다시 살펴 떠나는 게 맞는지 다시 살려야 할지 검토한다. 검사가 재판에서 피의자의 죄를 증명하기 위해 증거 및 합리적 변론이 필요하듯 책을 도서관에서 쫓아내기 위해서도 불용도서선정위원회라는 재판에서 주장할 타당한 이유와 근거가 필요하다. 변론을 위한 증거 확보 차원에서 서가에서 서고로 이동할 때 또한 서고에서 퇴출할 책을 선정할 때 세부 과정을 메모한다.
처음에는 도서 관리 프로그램이 일정 기간 동안 대출이력이 없는 책의 목록을 뽑아 주니 별문제 없겠다 싶었다. 찾는 사람이 없는 데 이것보다 확실한 퇴출 근거가 있겠는가?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500권을 뽑으려고 2년간 미 대출도서를 뽑았는데 200권밖에 나오지 않는다. 다시 2년간 한번 대출된 도서를 뽑아봤더니 1,000권이 나와 버린다. 이를 어쩌지? 그럼 그중에서 오래된 책 위주로 선별해 볼까 싶지만 무턱대고 출판 연도로 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문 사회 쪽은 10년 되어도 가치가 있는 책이 있는 반면 소프트웨어 책 같은 경우 새 버전이 나오면 작년에 출간되어도 구 버전은 쓸모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정밀한 작업이 요구된다.
숙고 끝에 선정한 후에도 문제는 따른다. 서가에서 영미문학 쪽(843)이 꽂을 자리가 없어 작업을 시작했는데 막상 뽑아보니 과학(400) 책들이 많이 선정되어 서가의 책들을 400부터 800까지 줄줄이 다 옮겨야 하는 대참사가 일어나는 경우가 흔하다. 서고도 똑같은 작업을 거쳐 책을 빼고 옮기는 작업이 요구된다. 어떤 직원은 서고에서 책을 줄줄이 옮기다가 책에서 쏟아지는 먼지 때문에 이마에 피부 트러블이 생겼다.
이렇게 수시로 하는 작업도 있지만 집에서 한 번씩 대청소를 하듯 장서관리계획에 따라 보통 2년에 한 번씩 자료실 전체 장서를 점검한다.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분은 “장서점검으로 3일간 휴실합니다” 공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재 있는 책과 도서관리 프로그램 상의 도서 데이터를 비교하여 책의 유무를 확인한다. 훼손도서와 이용 가치가 떨어지지는 책을 선별한다.
전 직원이 매달려서 자료실과 서고 책의 모든 바코드를 일일이 찍어야 한다. 평소 말이 많은 직원이 수군거린다. “저 직원이 바코드 찍는 거 봤어? 완전 슬로우 버전이라니까” 바코드 찍을 때 나는 소리로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보니 비교가 된다. 크게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지적당한 사람 소리를 들어보니 느리긴 하다. 그런데 바로 앞에 있는 직원의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승부욕이 솟구친다. 책을 하나하나 빼서 찍다가 도미노를 쓰러뜨리 듯 바코드만 보이게 책들을 비스듬히 눕힌 후 서가에 아슬아슬하게 달라붙어 ‘따다다닥~’ 찍는다.
‘이런 신박한 방법이 있었지롱~ 내 소리가 제일 빠르다. 으하하하!!’ 내가 찍은 책 수를 자랑하면서 의기양양하게 퇴근을 했지만 집에 가서 앓아 누었다. 미련한 짓을 한 것 같아 후회했다.
요즘에는 자동화 시스템이 덕분에 봉처럼 생긴 것을 서가에 쭈~~욱 쓸 듯이 하면 책 정보가 쏙쏙 들어가는 신통방통한 기계가 생겼다. 하지만 지금도 크기가 제각각인 어린이 책이나 두께가 얇은 서양서의 경우는 오류가 많아 바코드로 직접 찍는 경우도 많다.
아무로 알아주지 않는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게 짜증 났다. 그런데 며칠 전 브런치에서 신박한 글을 읽었다. 글쓴이는 출근을 ‘타자를 위한 희생’이라 정의했다. 자신이 글을 쓰는 그 순간도 노트북 제조업자나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희생의 결과물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은 도서 시스템 개발자인데 일을 하는 순간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어린이가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한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한다고 한다. 사회는 직장인들의 희생이 모여서 움직이는 것이며, 출근을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선순환의 고리란다.
출근을 이렇게 정의하다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그럼 눈에 띄지 않아 잘 모르는 수많은 노력의 혜택을 받고 있는 내가 다시 누군가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뭔가를 하는 건가? 내가 선순환 고리의 일부가 된듯하여 기분이 좋았다. 오늘도 도서관으로 즐거운 발걸음을 하는 이용자를 위해 끝이 없는 서가 정리, 삽질이라고 생각 말고 묵묵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