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개월 연수 이틀째이다. 얼마나 직장에 복귀하기가 싫었으면 거기서 새로 만난 분과 벌써 이틀이 지났다면 아쉬워했다. 5개월쯤 지났을 때 직장 복귀 스트레스로 발작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오늘은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작년 말에 5분 정도 자기소개를 위한 파워포인트를 미리 제출하라고 했을 때 당황했던 기억이 스쳤다. ‘자기소개 파워포인트’ 자체가 막막했으나 나이나 직업 경력 등 수치화하거나 시각화할 수 있는 소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진짜 나의 소개를 하고 싶었는데 그럴수록 뚜렷이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동안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해 이렇게나 생각을 안 하고 살았나 싶었다.
마지막 주라 인사발령으로 인한 업무 마무리와 인수인계 서류 작성으로 야근을 하고 있는 와중이라 대강 써서 제출했다. 허접하게 낸 자료를 떠올리며 발표 시간이 다가오자 당황했으나 점수를 매는 것도 아니니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 런. 데
발표하는 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려한 파워포인트 자료에 어찌나 달변인지 TV에 나오는 유명 강사가 자기소개하는 것 같았다. 요즘은 자기소개에도 트렌드가 있는지 인생 곡선, MBTI, 각종 사진들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자기소개를 검색할 생각도 못 한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커리어 소개도 넣지 않았고 나의 인생철학?? 같은 말도 안 되는 잡소리만 몇 자 쓴 것이다. 막상 나가니까 떨려서 횡설수설까지 했다. 솔직히 외적인 것들을 쓰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넣지 않은 면도 있지만 너무나 준비 안된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의 일반적 형식에서 벗어난 소개에 약간 똘아이 같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사알짝 만족감을 느꼈다. 항상 주변에 맞추려 스스로를 누르며 살았는데 아주 소소한 일탈을 한 기분이었다.
나처럼 대부분 직장에서 거의 번 아웃을 느끼면서 도망치듯 뛰쳐나오신 분들이 많았다. 어떤 분은 학교 배치업무를 담당하셨는데 민원에 시달리다가 자신의 얼굴이 점점 변하는 것을 느꼈고, 급기야 자신의 얼굴이 보기 싫어 컴퓨터 앞의 거울을 뒤집어 놓았다고 했다. 다들 직장을 다니면서 업무, 직장동료, 민원 중 뭐 하나는 돈값을 호되게 치르는구나 싶었다.
경력, 인생관, 꿈, 가족, 자기계발과 취미에 대한 다양한 소개를 해주셨는데 사람의 얼굴만큼 다양한 인생관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우리는 한 공간에 있어도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기에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을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과연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반추하는 기회가 되었다.
솔직한 말씀들에 공감과 위로를 받으면서 듣고 있는데 눈에 띄는 분들이 있었다. 힘들고 지친 삶 속에서도 긍정을 놓지 않는 분들이 유독 많았다. 특히 몇 분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셨는데 그분들의 긍정 에너지가 나의 마음에 닿으면서 나도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고 싶다는 열의가 샘솟았다. 이렇게 설레는 감정은 오랜만이었다. 6급만 올 수 있는 교육이라 대부분 40대였는 데 어떤 분은 40대는 ‘아직은 인생의 전반기’라고 하셨는데 많은 분들이 그런 마인드로 열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요즘 내가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금쪽 상담소 서경석 편에서 오은영 박사는 “에너지 뱀파이어를 피하지 않으면 피 본다"라는 처방을 내려주었다. 에너지 뱀파이어는 같이 부딪히면서 극복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피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도서관에서 만나는 에너지 뱀파이어를 왜 이렇게 극복을 못하고 발령 나면 생각나지도 않을 사람 때문에 왜 괴로워하고 있나 스스로 많이 원망했는데 생각해 보니 괴로운 게 정답이고 안 부딪혀야먄 해결되는 거였다. 극복하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러 뛰쳐나가야 했다. 독서모임이나 운동모임 같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가져야 했다. 안되면 비대면이라도 쑤시고 다녀야 했던 것이다.
물론 코로나와 바쁜 업무로 인해 제약이 있긴 하지만, 사람의 중요성을 간과한 내 탓도 있다고 느껴졌다. 교육을 통해 긍정적인 사람을 만나니 쩍쩍 갈라졌던 사막의 땅에 단비가 내리는 기분이었다. 다음에 에너지 뱀파이어를 만나면 저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는 나를 절대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뺏긴 피를 보충해 줄 사람들을 위해 어딘가로 뛰쳐나갈 것이다. 이번 교육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 같은 설레는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