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의 분리

나는 나의 인생만 책임질 수 있다.

by 라온써니

저녁 준비를 하며 거실을 지나가다 잠깐 TV를 보게 되었다. 전후 맥락은 잘 모르겠지만 식탁에서 세 가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빠 : 어떤 사람은 계단을 쉬지 않고 올라가지만 사람마다 속도가 다를 수 있지. 나는 니가잠깐 계단에 멈춰 쉰다기보다 주변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빠는 니가 너만의 길을 행복을 찾을 거라 믿고 기다릴 수 있어.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20대 아들에게 하는 아빠의 말을 들으면서 아들을 기다려주는 마음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과연 엄마는 무슨 말을 할까? 기대하는 와중에 생각지도 않은 말이 엄마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엄마 : 나는 너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어. 너의 행복은 니가 찾아야지.

아빠 : 그래, 엄마를 봐라. 힘들게 일하면서도 항상 행복하다고 하잖니. 너도 너의 길을 찾아라.

헉!!! 엄마가 너무 멋진 거 아닌가? 아들에게 이렇게 하면 행복하다며 자신의 기준으로 아들의 행복을 강요하는 대신 본인이 행복한 모습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면서 아들의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독립심을 키워주다니! 힘든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발견하는 엄마의 힘은 삶에 대한 통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제의 분리’를 하면, 내가 누군가를 돕거나 벽을 허무는 것, 용서하는 것은 나의 과제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과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그를 도왔는데, 그를 용서했는데, 그와 벽을 허물었는데, 그에게 친절하게 대했는데, 그에게 진심으로 대했는데 그는 변하지 않아”라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그가 변하지 않고는 그의 과제이다. 말에게 물을 먹이러 물가에 데러갈 수는 있어도 거기서 물을 먹을지 말지는 말이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책임’ 의식이 너무 강해 상대가 물을 먹는 것까지 책임지려 하고 물을 억지로 먹이고자 한다. 그것까지 되지 않으면 소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불안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 끼어드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삶만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다. 타인의 삶을 내가 책임질 수 없다. 그의 삶은 그의 책임이다. 자식의 삶도, 부모의 삶도, 자신이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일의 격/신수정/275p.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들게 된다. 자식과 부모님은 햇살처럼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불가능한 희망을 품게 된다. 인간의 삶이 항상 행복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유독 행복에 대한 높은 기준을 세우는 이유는 뭘까? 또한 그렇지 않은 상황이 되면 왜 불안해하며 자책을 할까? 특히 부모님에 대해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딸은 힘든 일이 있을 땐 하소연을 하며 나에게 조언은 구하지만,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독립심이 있고 나에게 특별히 바라는 바가 없기에 딸의 행불행에 대해 나의 책임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죄책감은 더더욱 없는 것 같다.(사실 딸은 밝은 성격의 소유자다.)

하지만 엄마의 하소연은 무엇을 해달라는 말은 없지만, 이면에 내가 무엇을 해주었으면 하는 의도가 느껴진다. 대놓고 하기에는 미안한지 말로 표현은 안 하지만 다 느껴지는 법이다. 미묘한 엄마의 요구를 확실히 알 수도 없고 짐작되는 것들을 다 들어주기엔 버겁기에 무시하고는 있지만, 마음 한켠이 무겁다. 엄마는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고 늘 말씀하시지만 그 말 자체도 부담스럽다. 진짜 바라는 게 없다면 그걸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 아마도 엄마는 나에 대해 양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바라는 마음과 바라지 않는 마음 둘 다 공존하는 것 같다.

무남독녀인 나를 전업주부인 엄마가 햇살 바라보듯 키웠기에 그 따뜻함으로 긍정적인 세계관이 생겼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부모님의 사랑은 현재 나의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관심(?)은 당시 지방에 살던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엄마의 ‘빈집 증후군’으로 나타났고 이후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생각한 ‘좋은 엄마가’가 아이들에게도 좋을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내 방식대로 엄마이면 그만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따라서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거나 어떻게 커야 한다는 기준이 없고, 더욱이 엄마인 나에 대해 아이들이 감사하거나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엄마가 되고, 너는 네가 되고 싶은 딸이 되면 그만이다.

숲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100p.

엄마도 나약한 인간인지라 나에게 사랑도 상처도 줄 수 있다. 감사한 마음도 원망의 마음도 들 수 있지만 저자는 둘 다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한다. 엄마는 엄마의 방식대로 나를 사랑한 것이고, 엄마 방식대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방식대로 딸의 노릇을 하고 있고 엄마는 고마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만을 표현하지만 나는 나의 방식을 고수할 수 밖에 없다.좋은 사람이 되려는 헛된 욕심으로 내 자신을 갉아먹고 싶지 않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TV의 엄마가 아들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것처럼 나도 나의 행복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나는 나의 삶만 책임 질 수 있다. 내가 부모님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는 것만큼 부모님도 나의 행복을 바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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