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의 고립감이, 나중에는 만족감으로
주재원 사회, 남초현상
주재원은 남초현상이 심하다. 회사에서도, 국제학교 학부모 모임에서도, 종교 모임에서도 주재원의 대부분은 남자다. 제목을 배우자로 썼지만 주재원 생활 배우자 적응은 곧 주재원 사모님 적응인 경우가 많다. 과거보다 여자 주재원이 늘었지만 우리 회사 기준으로 아직 주재원의 90%는 남자다.
첫 번째 장벽, 언어
모든 외국 생활이 그렇듯 첫 장벽은 언어다. 언어 장벽은 공항과 비행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 항공사라면 한국어 기내 방송이 있겠지만 중국 항공사라면 중국어, 영어 방송만 나온다. 현재 코로나로 중국행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은 멈춘 지 오래다. 상해, 광동 등 일부 대도시로 중국 항공편만 있는데 이 마저도 상해 봉쇄 등으로 목적지가 바뀌는 등 불안정하다.
중국 격리 기간부터 본격적인 답답함이 시작된다. 호텔 방 불은 어떻게 끄느지, 밥은 언제 주는지, 물은 언제 다시 보충해주는지, 내일 몇 시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지 한국어 안내가 부족하다. 중국어, 영어 때로는 한국말로 안내하는 경우가 있지만 뭔가 표현이 명확지 않다. 격리 호텔 근무자는 바이두 번역기를 통해 한국말 번역 공지문을 띄우고, 중국어를 모르는 한국 사람은 한국 번역기를 통해 해석한다. 한글 공지문에 반말이 나오고, 번역기를 돌린 결과는 어색하다. 예를 들어 "첨부 문서를 확인해주십시오(请查收)"를 "조사받아"로 번역하는 식이다.
격리 중에도, 격리 후 일상생활 중에서도 외국 생활은 역시 고단하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택시를 타고, 식당에서 주문을 하다가도 여러 좌절스러운 상황을 경험한다. 택시 기사에게 말을 제대로 못 해 엉뚱한 곳에 내리고, 음식 주문 중 말문이 막혀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받아 억지로 먹기로 한다. 외국 생활이 길어질수록 어색한 번역문을 보고 본의를 정확히 추측하는 등 눈치가 늘긴 는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일상생활 표현에 적응하는데 짧으면 세 달, 길면 여섯 달이 걸린다. 그 후로도 조금만 복잡한 상황에 처하면 상대방 말을 이해하기 어렵고, 내 말을 표현하기 어려워 답답하다.
두 번째 장벽, 음식
중국 사람들은 한국 음식을 "단 매운맛(甜辣)"으로 표현한다. 중국은 나라가 크니 지역마다 음식 맛이 다르다. "남쪽은 달고, 북쪽은 짜고, 동쪽은 맵고, 서쪽은 시다 (南甜北咸东辣西酸)"은 말이 있는데 꼭 이대로는 아니지만 지역마다 차이가 큰 건 사실이다. 딤섬으로 유명한 광동 요리, 맵기도 유명한 사천과 호남 요리, 상대적으로 밋밋하고 약간 단 상해 요리, 만두(饺子)가 유명한 동북 요리 등 차이가 크다.
그럼에도 중국 음식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기름(식용유)을 무지막지하게 쓴다는 점이다. 한국 요리는 일단 고춧가루를 넣고 끓이던지 무치던지 하지만 중국 요리는 일단 기름에 넣고 볶는다. 고기도, 야채도 종류를 가리지 않고 기름에 볶는다. 그래서 중국 마트에 가면 한국과 스케일이 다른 식용유 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느끼함, 한국 사람들은 견디기 어렵다. 야채도, 고개도 느끼하고, 심지어 국에도 기름이 둥둥 떠있다. 이런 중국 음식을 몇 번 연속으로 먹으면 한국사람들은 김치찌개, 라면과 같은 '개운한' 맛을 찾는다.
하지만 중국에서 배달 음식, 한국 식재료 온라인 배달이 잘 되어 있어 한국식 식단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한국 비빔밥, 김밥, 심지어 짜장면도 시켜 먹을 수 있고 온라인 마트에서 김치찌개, 된장찌개 재료나 레트로 식품을 살 수도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운송비에 관세가 붙으니 한국에서 사는 가격보다 보통 1.5배의 가격에 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모님들의 우울증
이런 언어, 음식 장벽에 마주치면 여러 주재원 사모님들은 첫 몇 달간 우울증에 시달린다. 언어불통의 답답함, 음식의 불편함 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유지했던 여러 관계가 단절되고 집에서 혼자 애만 봐야 하는 상황에 접하면 출산 우울증과 같은 고통의 시기를 다시 경험한다.
한국에서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했다면 우울증은 더욱 심하다. 아이는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남편은 직장 생활에 바빠 대화할 시간이 없다. 우울감의 종류와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최소 첫 한 달은 이런 우울감으로 고통 받는 사모님들이 많다. 한국에서 안정적인 평형 상태에서 외국에서 새로운 평형 상태를 찾는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중국 생활 적응은 위챗으로 통일
거처를 정하고 한국 이웃을 만나고, 국제학교 학부모 모임 또는 종교 모임에서 친구를 사귀다 보면 위에서 언급했던 새로운 안정 상태를 점점 찾게 된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주변 맛집을 설명해주고, 아이가 학교 간 사이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만 아니라면) 브런치 모임 또는 오후 티 타임을 하다 보면 이 생활도 괜찮구나 깨닫게 된다.
중국에서 이 모든 활동은 위챗방으로 표현된다. 나만 홀로인 것 같았던 중국 생활에서 내가 가입한 위챗방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한다. 한국마트 공동구매 방, 아파트 같은 동 한국인 어머니 방, 국제학교 학부모 모임 방, 종교모임 방에 가입하고 한국식당 주인, 미용실 언니 등과는 위챗 친구가 되어 사전 예약을 시작한다. 한국 반찬가게 방에 가입하면 돈가스, 고등어 등 오늘의 반찬을 보고 살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된다. 아이가 초등학생 고학년으로 전화기가 있다면 아이, 남편과 함께 가족 방을 만들어 일상을 공유한다. 이런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많아지면 처음의 고립감, 소외감을 없어지고 이 생활도 나름 할만하다 깨닫는다.
오늘은 누구와 어디 맛집 탐방을 갈지, 전에 아랫집 언니가 소개해준 예쁜 커피숍은 언제 갈지 고민할 정도로 스케줄이 빡빡하게 채워진다면 이제 적응을 넘어 즐기는 단계까지 된거다. 물론 예외는 있다. 한국 직장으로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거나 아이 교육 문제로 귀국이 급하다면 중국에서 마음 놓고 생활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만 아니라면 중국 입국 후 6개월만 지나면 대부분의 사모님은 중국 생활에 만족해 한다. 갈 때는 가기 싫어 울고, 올 때는 오기 싫어 운다는 주재원 사모님 이야기는 빈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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