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 오전 8:15
“부장님, 법인장님 사무실 앞에 직원들이 몰려 있대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현지 직원이
주변을 한 번 훑어본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직원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느껴졌다.
아침 회의가 있나 보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무실 공기가 묘했다.
웅성거림이 잦아들지 않았다.
직원들은 모두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몇몇은 고개를 들어 나를 힐끗 바라봤다.
평소와 다른 어색한 느낌.
자리에서 일어나 부서 자리를 둘러보았다.
우리 부서 직원의 절반가량이 자리에 없었다.
‘다들 어디 간 거지?’
그 순간,
아까 들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법인장님 사무실.
설마…
우리 부서 직원들도?
그럴 리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던 찰나,
옆 부서 부장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윗층에 직원 수백 명이 몰려왔대요.
지금 인사부장이 설명하고 있는데, 전혀 안 먹힌대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우리가 우려했던 바로 그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 법인장 사무실 앞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주재원 부장들과 함께 윗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리자마자
복도 전체를 가득 채운 직원들이 보였다.
이백에서 삼백 명이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좁은 복도를 꽉 메우고 있었다.
얼굴은 상기되었고,
목소리는 높아져 있었다.
소리치던 직원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우리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우리 역시 놀란 채 서로를 바라봤다.
직원들은 평소 상사로 보던 얼굴들이
한꺼번에 나타난 상황에 잠깐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은 길지 않았다.
“보상하라!”
곧 다시 고성이 터져 나왔다.
너희는 이제 우리의 상사가 아니다.
그런 메시지가 분명했다.
수백 개의 시선이
우리가 복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따라왔다.
법인장 사무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 앞에 경영기획실장과 인사부장이 서 있었다.
“법인장 나오라!”
직원들은 외쳤다.
인사부장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런 방식으로는—”
말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아우성에 그대로 묻혔다.
“파산!”
“배상!”
여기서 배상은 곧 경제보상금을 의미했다.
회사가 팔리게 됐으니
우리에게 돈을 내놓으라는 요구였다.
| 지분 매각과 루머
지분 매각 논의는 이미 1년 전부터 본사 차원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내부 토론을 거쳐 매각을 결정했고,
잠재적 매수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몸집을 키운 한 민영기업이
유력한 인수 후보로 떠올랐다.
논의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자문사가 선정됐고,
서류 실사에 이어 수개월 뒤 현장 실사도 이루어졌다.
보안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비밀은 늘 예상보다 빨리 새어 나갔다.
매수자 때문인지,
자문사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 내부 때문인지
끝내 알 수 없었다.
직원들은 잠재적 매수자의 방문 일정과
동선까지 알고 있었다.
딜 진행상황 문의에 우리는 본사 방침에 따라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는 원론적 설명을 반복했다.
직원들은 알고 싶어 했고, 정보의 공백은 루머가 채웠다.
매각 가격이 정해졌다는 말,
회사를 쪼개 판다는 말,
파트너사가 반대한다는 말,
이제는 찬성했다는 말.
우리도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었다.
그중 직원들을 가장 동요시킨 소식은 두 가지였다.
논의 중인 매수자가 민영기업이라는 점이었다.
그 회사는 낮은 급여와 높은 노동 강도로 악명이 높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직원들은 급여와 복지가 상대적으로 좋은 외자기업에서
그런 민영 기업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또 하나는 모레 지분 매각 계약을 체결한다는 소식이었다.
루머였다. 사실이 아니었다.
본사와 잠재적 매수자는 여전히 조건 협의 중이었다.
그러나 루머는 이미 위챗을 통해 전사에 퍼져 있었다.
직원 경제보상금에 대한 언급 없이 모레 계약 체결이 된다.
이 루머가 직원들이 집단행동을 시작하게 된 주요 이유였다.
| 경제보상금, 그리고 출장
직원들의 경제보상금 요구는
이미 공회를 통해 여러 차례 제기된 사안이었다.
우리 역시 본사와 수차례 논의했다.
그러나 이 사안은 항상 논의 아젠다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매각 대상 지분 규모,
매각 가격,
대금 지급 방식 같은
상위 아젠다들에 대한 논의가 우선이었다.
본사 법무팀은 경제 보상금 관련하여
“지급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는 원론적인 의견을 주었다.
현지 주재원들은 “현실적으로 지급이 불가피하다”며 본사를 계속 설득하고 있었다.
법인장은 지난주 본사 출장을 다녀왔다.
현지 상황을 설명했고,
오늘 오전 공회를 통해 “본사 설득을 계속하고 있다”는 진행 내용을
직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진행 상황에 대한 정식 안내 이전 일이 이미 벌어진 것이다.
| 험악해지는 분위기
법인장 사무실 앞 분위기는 점점 악화됐다.
고성과 삿대질이 이어졌다.
우리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
법인장이 한 차례 밖으로 나와 설명을 시도했지만
아우성에 묻혀 다시 들어갔다고 했다.
평소 회사 입장을 직원들에게 설명하였던 인사팀 직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인사팀 직원들 역시 집단행동을 하는 직원들 뒤쪽에 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지휘 체계는 무너졌고
조직은 마비됐다.
이제 이 갈등은 회사 대 직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주재원 대 중국 직원의 문제로 바뀌어 있었다.
중국 직원 중 주재원들과 함께 법인장 사무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머리가 희끗한 보안과장 한 명뿐이었다.
다행히 갈등은 물리적 충돌까지 확대되지는 않았다.
점점 격양되어 가는 분위기에서도 왜 물리적 충돌이 없었는지 그 이유는 곧 드러났다.
| 사복 공안
흥분한 직원들 사이에
낯선 얼굴들이 섞여 있었다.
검은색 사복.
굳은 표정.
다부진 체격.
직원들도 곧 눈치챘다.
“너 누구야?”
“너 공안이야? 나가!”
하지만 사복 공안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누군가 몸을 밀치려 하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인원 수는 직원들이 압도적이었으나 그 누구도 공권력에 감히 손을 대지는 못했다.
더 많은 사복 공안들이 하나둘씩 직원 틈 사이로 더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서 열 명쯤 되었을 때,
정복을 입은 공안 두 명이 들어왔다.
가슴에는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소리치는 직원이 있으면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카메라도 자연스럽게 그 방향을 향했다.
직원들 목소리가 낮아졌다.
조용한 잠입.
채증을 통한 압박.
중국 공안은
서서히 현장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었다.
| 밥은 먹었나요?
직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분노하는 사람,
소리치는 사람,
팔짱을 끼고 노려보는 사람.
구석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우리에게 미안한 눈빛을 보내는 직원도 있었다.
사무실에 남아 있는 직원은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일부 과격 직원들은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 욕을 해댔다.
주재원들은 직원들과 대치하느라 밥을 먹지 못했다.
그 사이 직원들은 번갈아 식당에 다녀왔다.
어수선한 틈을 타
나는 평소 알던 직원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안부부터 물었다.
“부장, 밥은 먹었어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왜 이렇게 된 건지, 설명해줄 수 있어요?”
나는 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옆에 있던 동료가 입을 열었다.
“회사가 팔린다면서요.
모레 계약한다면서요.
그런데 회사는 우리한테 아무 말도 안 해줘요.”
나는 잠자코 직원들의 말을 들었다. 그들의 걱정은 다음과 같았다.
민영기업이 들어오면
급여와 복지는 떨어질 것이다.
경제보상금도 주지 않으려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아무런 보상 없이 쫓겨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가고 싶지 않아요.”
두려움, 그것이 직원들의 마음이었다.
| 정부의 개입
직원들의 집단행동을 담은 동영상은
가족, 친구, 지역 사회, 한국 본사까지 실시간으로 전파되었다.
법인장은 본사에 전화를 했고,
담당 부서장은 그날 저녁 비행기로 중국에 오기로 했다.
직원 집단행동 사태 소식을 접한
정부 인사들은 당일 오후 바로 회사로 찾아왔다.
부시장,
공단 관리자,
사회보장국,
노동국,
공안 부국장.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상급 당 서기가
“사회 안정과 직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정부 인사들이 들어오자 직원들은 박수를 쳤다.
“우리 편이 왔다.”
그러나
정부 인사들이 “일단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직원을 설득하고자 하자
다시 고성이 터졌다.
“안 된다.”
“못 믿겠다.”
“지금 당장 보장하라.”
공안 부국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그들도 더 이상 군중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정부 인사와 법인장이 참여하는 회의는 길어졌다.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안에서는 회의가,
밖에서는 대치가 이어졌다.
| 저녁
해가 지자
직원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법인장 사무실 복도에 남아 있던 인원도
점점 줄어들었다.
오늘 결론이 나지 않으리라는 걸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그날 밤, 공안은 조용히 움직였다.
주도자로 보이는 직원,
유독 고성이 컸던 직원,
공안과 정부를 모욕한 직원들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잘 타일렀다.”
그날 이후 그날 목소리가 컸던 직원들은
집단행동 현장 속에서 보이지 않았다.
중국 공권력의 조용한 힘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첫째 날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