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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검 Apr 30. 2020

[개인]
주재원을 지원하는 목적

가자, 가보지 못한 길을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 


 - 김동률, '출발'                                              

                                                                                                                                                 



 회사에서 주재원 신청하는 데 있어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사람은 무척이나 가고 싶어 했고, 어떤 사람은 절대 한국을 떠나기 싫어했다. 하지만 해외 근무는 어떨까 호기심을 안 가져본 사람은 없었다. 다들 관심은  많았지만 정말 용기를 내어 신청하는 사람은 그중 일부였다. 가기 싫어하는 사람은 지금 한국 생활이 그럭저럭 괜찮아 포기하고 싶지 않아 했다. 외국어 스트레스도 있고, 가족도 포기할 수 없다. 배우자가 한국에서 안정된 직장을 하지고 있다면 일을 포기하고 같이 나가든지 아니면 혼자 외로이 외국에 나가든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또는 너무 커서 한국을 못 떠나는 경우도 있다. 너무 어리면 외국의 교육, 의료시스템이 미덥지 못해, 너무 크면 아이가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해서 같이 나서기를 꺼려했다. 


 반면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이유가 다양했다. 우선 자녀 교육 때문에 주재원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해외 주재원 생활이 아이에게 아버지로서(어머니로서)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국제 학교를 가면 연 4천만 원 또는 그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해외에 나가면 이 비용을 회사에서 (일부) 지원해준다. 지역에 따라 회사 지원 한도가 부족하여 자기 돈을 조금 보태는 경우도 있다. 내가 가게 된 중경도 그랬다. 하지만 추가 비용은 많이 부담될 정도는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한번 주재원 나갔다 복귀한 후 금세 다시 지원하여 부랴부랴 외국에 나갔다. 알고 보니 한국에 들어온 기간 동안도 그 사람의 자녀는 해외에서 계속 국제학교를 다녔다. 개인적으로 부담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크니 다시 주재원 지원을 한 것이다. 주재원 기간 중 회사의 국제학교 학비 지원은 큰 혜택이었다.  


 수입 측면에서 이득이어서 지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해외 근무 시 국내에서는 없던 해외 수당이 추가된다. 거기에 주택, 앞서 말한 학비 지원을 포함하면 비용은 줄고 수입이 는다. 교통, 핸드폰 등 통신 비용 지원도 무시할 수 없다. 해외 수당으로 급여를 30-40% 더 받고 주택 등 비용이 준다고 하면 실제 저축할 수 있는 돈은 한국에 있을 때의 2배 이상이 된다. 물론 회사마다 사정이 다르고 개인이 외국에서 얼마나 소비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한국에서보다 금전적인 여유가 더 있음은 분명하다. 내가 본 주재원들은 모두 '돈을 펑펑 쓰고 다닐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업무에 집중하다 보면 평일에는 돈을 쓸 일이 없었다. 저축이 목표라면 주재원은 확실히 좋은 선택이다. 


 해외 생활 또는 근무 자체가 주재원 지원의 목적인 경우도 있다. 가족과 함께 다 같이 선진국에서 살아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주재원 지원의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 등 서구 국가에 대한 지원 경쟁은 항상 치열했다. 싱가포르, 홍콩, 도쿄 같은 아시아 선진 도시도 '핫 플레이스'였다. 동남에 국가에 대한 선호도는 갈렸다. 생활환경, 근무 조건은 부족하지만 물가가 싸고, 휴양시설이 많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인도는 생활 조건이 열악하다는 소문이 많았다. 하지만 집안일하시는 아주머니, 어떤 경우에는 개인 기사까지 고용할 수 있는 여건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객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그냥 그 나라의 문화를 사랑해 주재원 근무를 계속 연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 중국은 선진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살기 어려운 곳도 아닌 중진국 수준으로 인식됐다. 불편할 수 있지만 그래도 살만한 나라, 그리고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성장하는 나라. 그 나라에 나는 지원했다.  


 외국어 학습에 대한 기대 때문에 해외 근무를 지원하는 사람도 있다. 외국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현지에 나가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외국어 공부는 한계가 있다. 너무 편하기 때문이다.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불편해야 한다. 의사소통이 안되어 겪는 좌절을 맛봐야 한다. 시킨 주문과 나온 음식이 다르고 택시를 타고 엉뚱한 목적지에 가봐야 열심해 외국어를 배워야겠다는 강한 동기가 생긴다. 외국에서는 당연히 현지어 듣기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난다. 한국에서는 읽기-듣기 순서로 배우지만 외국에서는 듣기-읽기 순서로 배울 수 있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순서를 생각하면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러운지는 확실하다. 외국어 학습은 주재원 지원의 또 다른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경력 측면에서 해외 근무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는 인식도 있다.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인사는 본사에서 한다. 해외근무를 하면 일단 본사에서 멀어진다. 멀어지면 잊힌다. 대리, 과장까지는 괜찮지만 그 이상 특히 본사 팀장, 부장 이상 위치인 사람들은 해외 근무 후 돌아올 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재원은 빨리 나갔다 빨리 돌아오는 게 좋다는 말이 많았다. 글로벌 경험, 글로벌 인재 말은 많이 하지만 정말 보직, 승진에 있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 사람의 성과와 능력을 보고 평가와 보직, 승진을 결정되어야 정석이다. 하지만 일단 해외에 나가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얼마나 했고,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본사 인사 부서에서 알기 어렵다. 본사 근무에 비해 해외 근무하는 직원에 대해 인사 부서가 가지는 정보의 양과 질에는 차이가 있을 수뿐이 없다. 해외 근무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본사에서 근무할 때에 비해 해외에서는 자신의 업적을 홍보할 기회가 적어진다. 해외에서 끊임없이 보고서를 작성하여 본사로 보내고 본사 출장자를 정성껏 모시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내가 주재원에 지원한 이유는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 자신의 중국어 학습, 자녀의 언어 교육, 해외 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특히 자녀의 경우 중국에서는 학교에서는 영어, 생활에서는 중국어 두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장점도 생각했다. 위에 언급하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리더십 경험이다. 대기업에서는 부장 승진까지 족히 20년은 걸린다. '근속연수가 긴, 안정된 직장'을 선택한 대가이다. 그런데 주재원으로 나가면 바로 부장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권력욕이라기보다는 과장, 직원을 이끄며 같이 성과를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어떻게 소통하고 피드백해가며 다른 사람들을 동기 부여시키고, 긍정 에너지를 이끌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시험해보고 싶었다. 카리스마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 강한 조직 장악력, 소통의 리더십 이론은 많았으나 어느 것이 맞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해외 경험을 통해 나만의 리더십을 찾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일을 해 볼 수 있다는 설렘이 있었다. 그렇게 무작정 일단 떠나보고 싶었다. 가수 김동률 노래의 가사처럼 이 길을 떠나는 이유를 나중에 이 길이 다시 나에게 알려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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