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검 Apr 30. 2020

중경, 충칭, 重庆

겹경사가 일어나는 세계 최대의 도시

중경의 중심 위중반도渝中半岛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 서정주, '귀촉도'                             

                 



 시인 서정주는 귀촉도란 시로 이별의 한을 표현했다. 여기서 귀촉도는 두견새를 뜻한다. 촉나라 왕 두우는 강가를 지나다 물어 빠진 시신 하나를 발견했다. 그를 건져내자 갑자기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두우는 이를 신기하게 여겨 그에게 정승의 벼슬을 주어 나라를 다스리게 한다. 정승이 된 그는 권세를 이용해 왕 두우를 배신하여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된다. 일순간 모든 것을 잃은 두우 왕은 촉나라에서 쫓겨난 채 타지에서 죽고 만다. 촉나라 사람들은 촉나라 땅에서 쫓겨나 다시 돌아오지 못한 왕 두우가 두견새로 다시 태어났다고 믿었다. 그래서 두견새를 촉나라로 돌아오는 길, 귀촉도라고 불렀다. 서정주는 새 귀촉도를 보며 돌아올 수 없는 망자를 생각했다.


 시 귀촉도에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서역 삼만 리, 파촉 삼만 리로 표현했다. 여기서 서역은 지금의 신장 위그루 지역, 파촉은 파와 촉을 의미하는 것으로 각각 지금의 성도와 중경을 의미한다. 고등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은 빨간 줄을 팍팍 그어가며 서역과 파촉은 돌아올 수 없는 극락세계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 극락세계에 내가 주재원으로 파견 가게 되었다. 


 중경, 중국어로는 重庆, 이를 한국어 발음으로 충칭이라고 읽는다. 가운데 중(中), 서울 경(京)을 생각했다면 오해다. 겹칠 중, 경사 경이라고 하니 겹경사란 뜻이다. 남송시대 황태자 조돈이 이곳에 왕으로 왔다가 한 달 만에 황제가 되어 기쁜 마음에 이름을 중경이라 붙였다고 한다. 어떤 분은 내가 중경에 일한다고 하면 영화 중경삼림을 말하는데 중경삼림은 홍콩 영화다. 영화 배경은 홍콩이고 나오는 모든 배우들은 광둥어로 말한다. 홍콩에 있는 '중경삼림'이라는 건물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영화 제목이 중경삼림이다. 만약 중경을 배경으로 하고 싶은 영화를 보고 싶다면 '훠궈영웅'(火锅英雄)을 보시라. 도시 중경의 모습과 중경의 대표 음식 훠궈, 중경 사투리가 잘 표현되어 있다. 과거 중경이 국민당 임시정부였던 시절 일본 항공 폭격을 피하기 위해 만들었던 동굴을 이용하는 은행 강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경은 어떤 도시인가. 


 중경은 크다.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도시이다. 출처마다 조금씩 다른데 보통 도시 인구를 3,200만 명 수준으로 본다. 홍콩 인구가 740만 명, 싱가포르가 560만 명이라니 둘을 합치 것보다 두 배 이상 크다. 규모로 보면 시市라기보다 거의 한 국가 수준이다. 중경을 한 나라로 친다면 중경보다 작은 나라가 150개 국가가 있다고 한다. 인구가 어찌 이리 많은지. 이유는 도시 면적이 워낙 넓기 때문이다. 82,368 km²라고 하는데 대한민국(남한) 면적이 ‎100,363 km²이다. 중경시 하나가 대한민국의 면적의 82%이다. 전라도 면적이 2만 km²라고 하니 대한민국에서 전라도를 뺀 크기보다 더 크다. 이게 대륙의 스케일이다. 


 중경 내륙 도시다. 중국에는 네 개의 직할시가 있다. 북경, 천진, 상해, 그리고 중경이다. 앞의 세 도시는 모두 연해 도시이지만 중경만이 유일하게 내륙에 위치한 도시이다. 중경이 서부 개발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강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중경에서 가장 중심인 지역을 위중반도渝中半岛라고 부르는데 북쪽의 자링강嘉陵江과 남쪽의 장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위중반도에는 지금도 국민당 중경 임시정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두 강이 합쳐져 더 큰 장강长江이 되고 이는 무한을 거쳐 상해까지 흘러간다.  


중경 (重庆 충칭)  *출처 : wikipedia
중경의 중심 지구  *출처 : wikipedia
중심 지구 중에서도 중앙인 위중구(위중반도)  * 구글맵

 중경은 비와 안개의 도시이다. 중경에 두 별명이 있는데 하나는 안개가 많아 우두(雾都), 또 하나는 산이 많아 산성(山城)이다. 10월부터 오는 비는 2월, 늦게까지는 3월까지 온다. 이 기간 중 비가 안 오면 대부분 안개다. 맑은 하늘 보기가 어려워 충칭에서 해가 뜨면 개가 짖는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반면 여름은 무척이나 덮다. 44도까지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경험하지 못했고 보통 40도까지는 올라간다. 남경南京,무한武汉,중경重庆을 중국의 3대화로三大火炉라고 부른다. 분지인 지형 영향이 크지 않나 싶다. 흔히 중경 사람들은 중경에는 봄과 가을이 없다고 말한다. 4월쯤 우기가 끝났나 싶으면 곧장 기온이 올라가 1-2주 만에 30도에 이른다. 비 오면 10도, 해가 뜨면 30도를 왔다 갔다 한다. 차를 타면 에어컨도 안 켜고 난방도 안 하는 기간이 1-2주 정도뿐이 되지 않는다. 중국어로 에어컨을 공조(空调콩티아오)라고 한다. '공기를 조정한다'이니 에어 컨디셔너AirConditioner의 의역이다. 중국에서 에어컨(空调)은 냉방기구와 난방기구(히터)를 동시에 의미한다. 우리는 온돌이 있어 겨울에는 보일러, 여름에는 에어컨을 쓰지만 중국에서는 에어컨으로 겨울에는 난방, 여름에는 냉방을 한다.  


 중국은 공업 도시다. 자동차와 부품 회사 중심의 기계 전자업이 발달했다. 이외 식품 가공, 화학 산업도 발달했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국민당 정부는 남경(난징)에서 무한(우한)을 거쳐 중경(충칭)으로 수도를 옮겼다. 이를 따라 많은 대학과 공장들이 중경으로 이전했다. 중경 기계 산업이 발달한 이유다. 중경 농촌 지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중심 지역으로 와 공장에서 일한다. 소득 수준이 꾸준히 높아지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백화점 등 쇼핑센터가 하나둘씩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이 그렇듯 중경 사람들은 이런 빠른 발전에 굉장히 만족해하고 자랑스러워했다. 2018년 말부터 자동차사 부진으로 어려워졌지만 그전까지는 10년 이상 1인당 GDP가 매년 10%를 초과하는 유일한 도시였다. 


 마지막으로 중경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45년 해방 전까지 있었던 역사적인 도시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중경은 1937년부터 1945년까지 국민당의 임시수도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민당을 따라 1940년 이곳 충칭으로 왔다. 국민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후원했다. 해방 전까지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 여기에 머물렀고, 광복군이 설립되어 훈련한 곳도 여기 중경이다. 광복군의 총사령은 지청천, 부사령이 영화 밀정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김원봉이다. 우리 회사 생산부장은 직원이 사고를 쳐 화가 날 때마다 80년 전을 생각하며 화를 참는다고 했다. 가장 어려운 시기 중국 정부가 우리나라 임시정부를 도왔는데 내가 직원에게 화를 낼 수 있겠냐는 말이었다. 아주 역사의식이 투철한 분이셨다. 80년 전 한국도 중국도 국가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위기의 순간 국민당 정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곳 중경에서 협력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동경로 

 이 큰 내륙의 비와 안개의 도시, 공업이 발달한 역사적 도시에서 나는 나의 주재원 생활을 시작했다. 서정주가 노래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파촉 삼만 리'는 이제 비행기 세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비즈니스 투자처로 변해 있다. 나는 귀신이 아닌 사람으로 다시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 주재원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작가의 이전글 [개인]  주재원을 지원하는 목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