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검 May 02. 2020

국제학교, 아이의 적응

언어 학습보다는 정서 발달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지지자 불여호지자,호지자 불여락지자)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 논어



                                                                                                                                                  

 "아이 걱정 말고, 니 걱정이나 하세요"


 주재원 나가기 전이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가 외국에 나가 갑자기 외국어 환경에 노출되면 충격이 크지 않겠냐고 걱정하며 물어봤다. 그때 사람들이 나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아이는 알아서 적응 잘하니 당신 걱정이나 하세요. 말하자면 그런 뜻이었다. 정말 아이는 외국어를 빨리 배우니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건가? 스트레스 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지, 부모는 정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지 궁금하고 초조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이는 알아서 적응하니 신경 안 써도 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이가 어른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데 더 빠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는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자연스럽게 새 언어를 터득한다는 말은 불행히도 사실이 아니다. 부모의 도움 없이 알아서 적응할 수 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아이도 어른만큼 못 알아듣는 답답함에 힘들어하고, 자신이 표현한 말이 잘 전달되지 않을 때 좌절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외톨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어른만큼 오래, 뚜렷이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정서적 상처가 없는 것도 아니다. 마음에 상처, 불안한 심리는 생각보다 많이, 긴 시간 동안 아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부모가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이거다. 


 우리 아이는 만 5세에 중국에 갔다. 지금도 아이에게 "처음 유치원, 초등학교 갔을 때 답답하거나 스트레스받지 않았어?"라고 물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사실이 아니다. 그런 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잘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 아이는 지금 영어보다 중국어, 중국어보다 한국어를 더 잘한다. 지금도 한국말할 때 목소리가 제일 크고, 중국말할 때가 다음, 마지막이 영어이다. 소리의 크기 차이는 그 언어에 대한 자신감의 차이이다. 질문을 바꾸어 "친구들이 안 놀아줄까 봐 걱정한 적 있어?" 물어보자 아이는 영어로 하는 국제 초등학교 처음 갔을 때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놀이와 관련된 기억은 선명하나, 언어 적응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아이의 주된 관심사가 학습이 아니라 놀이라는 사실을 우리 부모들은 자주 간과한다. 아이의 기억과 부모의 기억은 다르다. 부모는 아이의 학습에 집중한고 아이는 자신의 놀이에 집중한다. 아이는 국제학교 간 첫 학기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생겼다. 초조해지고 긴장할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은 이후 몇 년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언어 환경에 노출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무시할 만큼 작지 않았다. 


 왜 아이의 인식과 부모의 관찰은 다를까. 아이가 인도 아이와 영어로 노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인도 친구가 영어로 말하자 아이는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로 떠듬떠듬 영어로 말하다 나중에는 단어가 맞든 틀리든, 문법이 맞든 틀리든 어설픈 영어 단어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외국어로 말할 때 실수를 두려워 하지만 놀이에 빠진 아이는 그렇지 않다. 발음, 단어, 문법은 중요하지 않다. 재미있게 놀아야 한다. 그것이 전부다. 언어는 수단일 뿐이다. '이번에는 표현이 괜찮았군' 성취감을 느끼지도 않고, '요새 발음이 많이 좋아졌어' 자족하지도 않는다. 그저 놀기 위해 말한다. 말하지 못하면 못 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 우리 아이가 중국어, 영어에서 가장 처음 배운 표현, 가장 자주 사용했던 표현은 바로 "봐봐"(你看, Hey look)였다. 처음 말이 안 되면 행동으로 놀아야 한다. 이상한 목소리, 모습을 흉내 내며 친구들과 같이 깔깔대고 웃어댄다. 언어가 안돼도 놀아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면서 단어가, 표현이 하나씩 늘어난다. 아이는 그렇게 배운다. 


 그렇다면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할까. 부모의 기대와 아이의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크다. 부모 마음에 아이가 외국에서 조금이라도 더 외국어를 배웠으면 하지만 욕심이다. 중국어, 영어 노래를 백날 틀어 준다고 아이의 어휘가 많아지고 표현이 느는 게 아니다. 아이는 교류를 통해 배운다. 부모든 친구든 함께 나누어야 발전한다. 언어 적응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아이와 같이 새로운 언어로 교류하고 놀아주는 거다. 좋은 방법이지만 어려운 방법이다. 부모가 항상 함께 할 수 없다면 최소한 외국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말이 안 통해도 같이 축구는 같이 할 수 있고, 로봇 조립도 같이 할 수 있다. 외국인 친구에게 중국어로 말해봐, 영어로 말해봐 강요하는 것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상황을 회피하고자 하는 감정만 키울 뿐이다. 스트레스를 주어 학습하게 하는 방법은 지금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외국어 공부 자체를 두려워하게 하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배움이 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언어 학습보다 정서 발달이 우선이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은 외국에서 보내게 된 우리 아이에게 외국어 발달 속도보다 성장과 배움이 즐겁고 의미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은 장기전이다. 부모는 경험과 정서를 선물해야지 학습을 강요하는 방식은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국제학교 한 반에 한국 학생들이 서넛 있었다. 우리 아이는 기로에 섰다. 한국 친구와 놀지 외국 친구와 놀지 망설였다. 외국 친구들과 놀면 "쟤는 한국 편 아니야"하며 한국 친구들과 못 놀게 막는 못된 친구도 있었다. 한국 부모들은 대부분 아이가 외국 친구들과 더 어울리기를 바랐다. 우리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는 아이에게 강요할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 친구들이랑 논 날에는 우리가 "누구랑 놀았어?" 물어보면 대답하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아 우리가 의도치 않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구나' 깨달았다. 외국어보다는 친구 관계, 친구 관계 이전에 아이의 심적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왔지만 우리도 다중 언어를 구사하는 아이로 키우자는 부모 욕심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그걸 깨달은 뒤로 아이가 외국 친구와 재미있게 놀 수 있다면 외국 친구와 놀고  한국 친구가 더 편하다면 한국 친구와 놀아도 전혀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아이에게 보냈다. 아이는 다행히 한국 친구, 외국 친구를 가리지 않고 잘 섞여 놀았다.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정서적으로 한국 친구들과 문화적으로 더 가깝다고 느끼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정체성이 확립되면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외국 친구와 많이 어울리면 좋겠다는 부모 욕심에 아이를 외국인으로 키울 수는 없지 않은가. 외국 친구라고 다 좋은 친구도 아니다. 서양 친구와 잘 놀던 시절 선생님 면담을 간 적이 있다. 담당 선생님은 서양 사람 특유의 과장된 제스처를 섞어 가며 요새 우리 아이가 점점 더 '나쁜 선택'을 한다고 우리에게 귀띔해주었다. 수업 시간에 뒤에 앉고, 자주 왔다 갔다 하며,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알고 보니 당시 잘 어울렸던 서양 친구가 전교에서 소문난 개구쟁이였다. 그것도 모르고 당시 우리는 아이가 서양 아이와 논다며 좋아했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외국 친구와 어울리며 나쁜 습관만 늘어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4년이 지나고 보니 아이는 원어민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국어와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 그래도 가창 유창한 언어는 역시 모국어인 한국어이다. 마지막 면담 갔을 때 선생님은 수학 시간에 우리 아이의 역할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학생들이 수학 문제를 잘 이해 못하면 우리 아이는 손을 들고 선생님께 양해를 구한다고 한다. "선생님 제가 친구들에게 설명해도 될까요?" 선생님 승낙을 받고는 한국 친구들에게는 한국어로, 중국 친구들에게는 중국어로 설명해준다고 한다. 어깨가 으쓱해졌다. 꼬마 통역사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그전에 선생님께 양해를 구한다는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항상 잘난 체 하지 말고 필요한 상황에만, 가급적 요청이 오면 도움을 주라고 교육했다. 언어를 잘하면 좋지만 초등학교 수준 외국어를 조금 더 잘한다고 자랑하고, 자만하는 습관이 생긴다면 그게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복귀전 아이는 중국어도 영어도 원어민 반에 있었다. 두 외국어가 원어민 수준이라기보다 비원어민 반에 있기에는 수준이 애매해서 선생님들이 그렇게 배려해준 것이 아닐까. 중국어 반에서는 중국 원어민 아이들을 힘겹게 따라갔고, 영어반에서는 서양, 동양에서는 싱가포르 친구들과 함께 힘겹게 수업을 들었다. 우리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가는 아이가 자랑스러웠다. 


 물론 외국어 학습은 좋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우리 아아는 중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설명하면 한국어, 중국어, 영어 3개 국어를 다 잘하겠네요 하며 여러 질문을 한다. 대부분은 외국어 학습 방법에 대한 질문이다. 외국어 습득 과정 중 겪을 수 있는 소외감, 좌절감, 자존감의 약화 등 부작용에 대한 질문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아이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에 서투르다. 우리 아이는 수업 시간에는 완벽하지 않은 영어 때문에, 친구와 놀 때는 완벽하지 않은 중국어 때문에 아이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선생님들은 한국어를 하지 못했고 중국 국제학교에서 한국어가 모국어인 아이들은 '주인공'이 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아이를 격려하고 더 높은 자신감,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주재원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다양한 언어도 문화도 강제로 학습시키기보다는 이를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우리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이 아닐까. 


 주재원은 언젠가는 한국으로 복귀한다. 그때는 외국어보다는 한국어가 더 큰 문제가 된다. 갈 때는 외국 적응에 걱정 올 때는 한국 적응에 걱정이다. 해외에서도 쉬지 않고 모국어 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부모와 함께 한국어로 생활하고 한국 가정 아이들과 같이 자주 만나 놀면 된다. 적어도 구어(듣고 말하기) 학습에는 환경상 문제가 없다. 읽고 쓰기는 한국에 돌아가 동년배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가 선생님이 되어 학습지를 같이 풀 수도 있고 주말 한글학교에 보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시도한 방법 중에 EBS 인터넷 수업이 가장 편리하고 효과적이었다. 학년별, 과목별 다양한 강의가 무료로 제공된다.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는 가정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아이와 즐길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은 어디를 가든, 어떤 조건에서든 동일할 것이다. 아이뿐만이 아니라 부모도 이러한 지원 과정을 '즐기는 사람'(樂之者)이 되어야 적응과 학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주재원, 아내의 적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