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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검 Jul 02. 2020

[이슈] 사드, 한국 기업 괴롭히기

그들은 어떻게 한국 기업을 괴롭혔는가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영원한 것은 우리의 이익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익을 추구할 의무가 있다.  

 - Henry John Temple, 영국의 정치가




 2015년 9월 3일. 

열병식 (Reuters)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최고로 좋을 때였다. 중국 '전승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대통령이 이 행사에 참가하리라 예측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옆, 푸틴 다음 자리에 앉았다. 서방국가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중국은 '서양과 자주 어울리던 한국'의 이번 행사에 참여를 의외라고 생각했다. 중국 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며 관련 기사를 냈다. 한국의 보수 언론은 어떻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대한민국과 전쟁을 했던 중국 군대의 열병식에 참관하느냐 비판했다. 실리를 따지는 사람들은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시간  내내 박근혜 대통령은 무표정의 얼굴을 유지했다. 웃기도 울기도 어려운 애매한 상황, 미중 사이 외줄 타기를 해야 하는 한국 외교의 딜레마의 시작이었다.  

 

 2016년 7월 8일.

사드 (미국 미사일방어국)

 한미 양국 군 당국이 사드 배치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한중 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중국 해군은 서해에서 사상 최초 실탄 사격훈련을 했다. 한 중국군 장군은 한국에 대한 "외과수술식 타격"을 주장했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의 중국 사업체에 대한 소방, 위생, 안전 점검이 시작되었다. 모든 중국 여행사는 한국으로 가는  단체관광 상품을 취소했다. 중국 정부는 '정부차원의 경제 보복 조치는 없으며 중국인들이 자발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라디어와 TV, 마트에서 한국 연예인이 나오는 모든 광고들이 사라졌다. 최근 지어진 한류를 테마로 한 쇼핑몰은 전혀 엉뚱한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고 이전 쇼핑몰에서 '한국말로 써져 있었던 광고 문구'들은 다 없어졌다. TV에서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한국 사람의 인터뷰 내용이 반복되었다.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대통령 되면 사드 철회하겠다'라고 주장하는 이재명(당시 성남시장)에 대해서 중국 언론은 연일 보도했다. 


 2017년 사드 배치가 완료되자 충징에 있는 한국 기업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공안국, 해관(관세청), 세무국, 안전감독국, 규획국, 환경보호국, 소방국 등 여러 정부 기관에서 돌아가며 조사를 했다.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2개의 공장에 같은 날 공안에서 전화가 왔다. 공장의 정확한 위치를 묻고 있었다. 방문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서로 다른 두 지역을 총괄하는 윗선의 지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해관은 우리가 구매하는 한국 소재 가격이 너무 낮은 것 아니냐 압박했다. 수입 가격을 낮추어 관세를 고의로 적게 내지 않냐고 의심했다. 다음날 방문한 세무국에서는 한국에서 소재를 너무 비싸게 사서 이익을 줄여 법인세를 적게 내는 것 아니냐 물었다. 웃음이 나왔다. 같은 수입 소재 가격에 대해 두 정부기관이 반대인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정상 가격에 수입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안전감독국에서는 회사 건축물, 안전장비, 조업 방식 측면에 안전규정 위반 사항이 없는지 점검했다. 규획국은 설계도대로 건물이 지어져 있는지, 불법 건축물은 없는지 확인했다. 환경보호국은 기준을 넘는 오염물질은 없는지, 정화 시설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했다. 소방국은 소방시설, 장비 등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환경보호국과 소방국은 이슈를 발견하면 영업정지를 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에 있는 많은 기업, 특히 롯데 마트에서 많은 '소방상의 문제'가 발견되었다. 


 결국 중국 직원들이 가장 많은 고생을 했다. 여러 질문과 문제 제기에 우리는 규정대로 올바르게 관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자료와 증빙 문서들을 제출해야 했다. 몇 주간 저녁에 집에 가지 못하고 설명 자료들을 만들었다. 다행히 정부기관에서 크게 문제 삼을 만한 이슈는 발견되지 않았다. 소소한 개선사항 지적만 몇 있었을 뿐이었다. 평소에 중국 관련 규정을 철저히 지켜 관리했던 결과였다. 외자 기업들은 이런 사태가 터지면 표적이 되기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중국 기업들은 지키지 않는 사문화된 규정까지 다 지키면서 회사를 운영했다. 주재원들은 이를 외자기업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주말에 모여 다른 회사 주재원들과 서로의 경험을 나누었다. 다들 처지가 비슷했다. 마만 소수의 몇 기업에 대해서는 조사가 없거나 있어도 조사 강도가 매우 약했음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하고 있는 '첨단산업' 회사들이었다. 중국 정부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나에게 도움이 될 기업과 이제는 없어도 될 기업들의 구분. 결국 누가 더 아쉬우냐의 문제였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입장 차이도 느낄 수 있었다.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이 조사를 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충칭의 경우 아직도 외국의 투자가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 지방 정부도 정말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내어 회사 내쫓고자 하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평소에 친분이 있던 중국 관료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니 좀만 참고 기다리다고 조언해주었다. 조사는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고역이었다. 


 회사 창립기념일 때 단체로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는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여행사는 저번 달까지만 해도 있었던 한국 단체여행 상품이 갑자기, 모두 없어졌다고 회신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한중 관계가 어그러지자 중국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했고, 중국 직원 고용과 복지 향상에 큰 공헌을 하고 있는 중국 내 한국 기업들이 공격의 표적이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 국가 내에서는 공공의 선과 정의, 공평함을 추구하지만 국제 관계에 있어서는 냉정한 이익 추구만이 있을 뿐이다. 그 이익관계가 훼손되었을 때 서로의 서로에게 얼마까지 험악해질 수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의 입장 변화에 따라 평소의 친근한 얼굴을 싹 바꾸고 어떤 이슈라도 잡아내기 위해 집요하게 질문을 하던 그 정부기관 담당자들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들도, 내 자신도 불쌍했다. 이것이 한중관계의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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