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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검 May 02. 2020

주재원, 아내의 적응

낯선 환경에 우울했던 아내가 다시 행복을 찾기까지  

사람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로서만 측정될 수 있다.

 - 니체




 "갈 때는 가기 싫어서 울고, 돌아올 때는 오기 싫어서 우는 게 주재원 사모님들이야"


  주재원 선배들이 이런 조언을 해줄 때 과연 사실일까 궁금했다. 위로하고자 하는 말인지 아니면 정말 주재원 사모님들은 다들 그런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 결과를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주재원에 단신부임이 있고 가족부임이 있다. 단신부임은 말 그대로 혼자 나가는 경우이고 파견되는 주재원이 미혼이거나 기혼이라고 상황상 가족이 같이 외국에 나가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만약 가족 부임이라면 주재원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주재원 가족 모두가 언어, 음식, 생활 습관 등 모든 것이 다른 타지에서 문화 충격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주재원 사모님이 한국의 직업이 있을 경우 직장, 인간관계를 모두 버리고 생소한 외국에 나갈 때 상실감과 좌절감은 무척이나 크다. 거기에 아이가 아프거나 새로운 국제 학교에 적응을 못한다면 이중고, 삼중고가 된다. 


 언어가 가장 문제다. 현지어가 안된다면 삶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이동(교통), 음식부터 해결이 안 된다. 택시 기사에게 길 설명이 안돼 엉뚱한 곳에 내리고, 주문하지 않은 음식이 나와서 하소연하지 못하는 경우 좌절감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사모님뿐만이 아니다. 아이도 유치원, 학교를 가면 새로운 언어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재원 나간다고 하면 외국어 배워서 좋겠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이 과정은 두려움과 낯섦, 좌절과 고통의 연속이다. 주문하지 않은 음식을 먹고, 택시에서 목적지와 다른 곳에 내려 먼 길을 걸어가며 다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반성하며 조금씩 언어를 배운다. 주재원은 업무를 위해 통역 등 회사 지원이 있을 수 있지만 주재원 사모님의 경우 지원군 없이 홀로 외로이 적진에 서 있는 기분이다. 스트레스받는다고 병이 나도 안 된다. 병원에 가면 다시 스트레스를 더 받기 때문이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는 국제학교를 간지 한 달만에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생겼다. 새로운 언어 환경에 노출되고, 아직 어색한 친구들에 둘러싸여 아무리 성격이 좋은 아이라도 스트레스가 크지 않을 수가 없다. 


 음식도 문제다. 한국 대부분의 음식에 고추장을 넣듯 중국에서는 거의 모든 음식에 기름을 넣어 볶는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많이 느끼하다고 느낀다. 처음에는 소화가 잘 안되고 배탈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중경 음식은 사천요리와 비슷하여 매콤한 음식이 많았다. 빨간 고추기름 외에 화초花椒로 맛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화초는 훠궈火锅(중국식 샤부샤부)를 먹다 잘못 씹으면 갑자기 입을 얼얼하게 만드는 바로 그것이다. 후추의 어원이 호초胡椒, 고추의 어원이 고초苦椒라고 하는 데 모두 같은 초椒가 들어가는 같은 계열을 음식이다. 화초를 영어로는 Sichuan Pepper라고 부른다. 사천성에 나는 후추라는 뜻이다. 처음 이 맛을 접하면 놀라지만 몇 번만 먹으면 그 맛에 중독되기 마련이다. 요새 한국에서도 마라샹궈麻辣香锅가 유행인데 한국사람이 새롭다고 느끼는 그 맛이 바로 화초의 맛이다. 고추에 익숙한 한국인은 고추 사촌 화초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그래도 그럭저럭 적응해 살아갈만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공기 오염도 문제다. 한국도 미세먼지로 문제지만 공장이 많은 중국도 미세먼지 먼지 문제가 심각하다. 중경은 그나마 난방이 가동되는 11월부터 3월까지만 심각한 수준이었고 다른 계절은 괜찮은 편이었다. 겨울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며칠 만에 모두 목이 칼칼해졌다. 공기청정기를 사고 집 안 여기저기 배치했다. 가급적 창문을 열지 않았다. 몇 달간 고생을 했지만 노력을 통해 집안 환경도 개선되고 몸도 적응하게 되었다. 겨울에는 일기예보를 보고 미세먼지가 많다 싶으면 외출을 삼갔다. 3개월 정도 지나자 목이 칼칼한 형상은 사라졌다. 봄이 되어 공기가 좋아진 면도 있지만 인간의 놀라운 적응 능력 때문이기도 했다.


 날씨도 문제다. 중경의 기후는 극단적이다. 40도를 훌쩍 넘는 한 여름의 강렬한 태양, 끊임없이 비와 안개가 지속되는 겨울 이 두 계절만 있다. 여름은 4-5개월인 반면 비와 안개는 6개월 지속되니 보습제가 따로 필요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 피부가 좋았고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키는 한국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작았다. 비와 안개가 많다 보니 하루라도 잠깐 해가 뜨면 모두 공원에 나와 햇살을 즐겼다. 겨울 우기가 길고, 여름에는 더우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내 쇼핑몰에서 여유시간을 즐겼다. 몇몇 한국 사람들은 무릎이 아파 병원을 가고 심할 경우에는 수술을 하기로 했다. 의학적으로 맞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중경의 습한 날씨 때문에 무릎에 물이 차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훠궈火锅를 벗고 땀으로 수분을 뽑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그런 현상을 겪지 않았다. 


 인간관계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주재원은 직원, 고객, 공급상, 본사 출장사로 이어지는 회식에 몸이 지쳐가지만 주재원 사모님은 자신이 특별히 노력하지 않는 한 외톨이가 되기 쉬었다. 아이는 학교를 가면 어떻게든 친구를 만들고 같이 놀았지만 어른에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재원 사모님들은 여러 종류의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맛집 여행 모임, 쇼핑 모임, 커피숍 모임, 교회 모임 등 다양했다. 한국 사람들을 멀리하고 중국 친구들과 어울리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한국 사람, 사회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뒷담화의 힘은 무서웠다. 사모님들의 입심은 대단했다. 주재원, 주재원 사모님, 어쩔 때는 아이가 여러 사모님 '모임'에서 오늘의 뒷담화의 어젠다로 올려졌다. 사실과 상상력이 구분하기 어렵게 버무려진 루머가 한국인 사회를 오갔다. 외국에서 한국인 사회는 무척 좁았다. 한국인들끼리 같은 동네 주민이자, 같은 국제학교 학부모, 같은 교회 교인, 같은 골프 모임 회원이 되기 쉬웠다. 좁은 한국 사회에서 나쁜 일로 유명해지는 것은 어떻게든 피해야 했다. 피해자가 되면 안 되겠지만 가해자가 되어서도 안된다.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어른,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를 발견했을 때 슬쩍 뒤로 그 집을 욕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지만 이는 인간관계를 망치고 한국인 사회를 멍들게 한다. 우리 모두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다. 부정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을 멀리 하고 서로에게 힘을 주고 긍정적인, 건설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힘든 타국 생활을 버텨낼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아내는 중국 처음 왔을 때 반년 간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한국의 직장, 친구를 한 번에 잃었기 때문이다. 본인도 적응을 못 하는 데다 아이 적응까지 도우려니 정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원인을 제공한 남편으로서 더 위로해주고 함께 해주었어야 하지만 마찬가지로 새로운 언어, 환경, 업무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상황에서 그런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힘든 나날이었다. 시간이 지나 주재원 임기가 끝나 한국으로 복귀 명령이 나온 날 아내는 많이 아쉬워했다. 나는 살짝 당황했다. 중간에 무슨 일로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생각해보니 교회, 학교 학부모회 등을 통해 사람들을 아름아름 알게 되면서 언젠가부터 아내의 일정이 빡빡히 매워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할까 행복한 고민이 넘쳐났다. 중국 소비 시장의 발달로 새로 오픈한 쇼핑몰, 맛집, 커피숍 등 갈 곳이 많았다. 여러 사람을 만나 여행 정보, 육아, 독서 토론 등 할 이야기도 많이 있었다.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생각이 들면 스스로 발굴한 사람이 적은 아늑한 커피숍에 가 독서와 사색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내는 목적 없는 한담보다 자신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배우고 성장하는 느낌을 좋아했다. 부정적인 표현을 자주 하는 사람을 멀리 했고 현재에 감사하고 밝은 미래를 희망으로 맞이하는 성실하고 훌륭한 사람들과 주로 어울렸다. 사람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로만 측정될 수 있다고 한다. 아내의 인간관계는 갈수록 풍성해졌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갔다. 동료 주재원, 직원, 고객 등 업무상 만나야 하는 사람들로 인간관계가 갈수록 좁아지는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주재원 사모님이 주재원 나갈 때는 싫어서 울고, 돌아올 때는 돌아오기 싫어서 운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 자신의 가치의 발견했을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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