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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검 May 03. 2020

[문화] 중국의 여자 과장들

거침없는 중국 여성, 하지만 워킹맘은 오늘도 피곤하다

妇女顶起半边天

하늘의 절반은 여성이 받치고 있다

 - 모택동




 긴장된 마음으로 처음 출근하는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공식 출근 시간이 8시 반. 나는 7:50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다. 한국처럼 한 시간 전 미리 와 있는 직원들은 없었다. 이곳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수업 때 배운 중국어는 통할까. 중국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은 한국과 많이 다를까. 머리가 복잡했다. 초초히 기다리기 이십 분째, 두 직원이 들어왔다. 서로 멈칫. 2미터 거리, 더 이상 간격을 좁히지 못하도 낯설게 인사한다. "您是?"(혹시 당신은?) 질문에, "我是新的部长"(저는 새로 온 부장입니다) 머릿속으로 자기소개를 수십 번 반복했지만 이 이상 말이 나오지 않는다. 두 명 중 한 명이 "皮肤这么好,怎么管理的“(피부가 좋으시네요, 어떻게 관리하시는 거예요)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나 만큼이나 어색함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입사한 지 몇 년 안 되는 직원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부서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두 과장이었다.  


 나는 부장이었고, 우리 부서에는 세 명에서 다섯 명의 과장이 있었다. 조직개편에 따라 내가 관리하게 되는 부서의 범위에 변화가 있었다. 함께 일하게 된 다섯 명의 과장 중 4명은 여성이었다. 과장들은 각각 4명~7명의 직원을 관리했다. 부장 역할도 처음, 이렇게 여성이 많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일이 많았다. 인사, 재무, 총무 등 내부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일, 건설 중인 공장 관리, 준공식 준비, 여러 본사의 요청 사항 대응 등 어색함이 오래갈 여유가 없었다. 일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이고 회의를 했다.

 과장들은 새로 온 부장이 꼼꼼하고 깐깐한 스타일임을 깨달았고 나는 여자 과장들이 거침이 없는 성격임을 발견했다. 82년생 김지영과 같이 자신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그런 여성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싫으면 싫다고 솔직히 표현하는 당찬 모습이었다.


 여성 과장들은 적극적으로 상황 주도했다. '여성스러움'과 '강한 리더' 사이 딜레마 따위는 없는 듯이 보였다. 회의를 해도, 행사를 준비해도 항상 선두에서 직원을 이끌었다. 공사 관리를 위해서 안전모를 쓰고 현장을 누비고 필요에 다라 즉각적 판단을 하는 것도 여성 과장이었다. 심지어 행사 준비를 위해 물품, 도구를 나르는 일에도 약한 여자라는 이유도 피하지 않았다. 부장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느라 직설적인 말을 삼갔지만 부하 직원에게는 필요시 직접적인 피드백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관리자들이 "그것도 좋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돌려 말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곳 여성 과장들은 자기 판단에 따라 "안돼", "이것 준비해" 단호히 답변과 지시를 했다. 과장이라는 중간 관리자 지위, 한국보다 더 권위주의적인 사회 풍토도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적극적으로 상황을 주도하는 당찬 중국 여성 과장들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개인 차이는 있다. 어렵고 힘든 일을 피하고 몰래 뒤로 빠지려는 일반 여자 직원이 있었다. 이 직원을 여성 과장들은 가만두지 않았다. 평가과 면담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더 이상 과장 선에서 해결이 안 된다는 판단을 했는지 부장인 나를 직접 찾았다. 조직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그 직원의 보직 변경을 요청했다. 이슈가 되었던 직원도 직접 나를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했다. 곤란한 상황에서 균형감이 중요했다. 일반 직원 문제에 부장이 너무 간섭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이슈 직원과 업무상 접촉이 많은 다른 직원, 그리고 직속 상급자가 아닌 다른 과장을 면담하여 그 직원의 평소 근무 태도에 대해 물어봤다. 여러 사람에게 공통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문제가 있음이 분명했다. 만날 때 나에게 항상 밝은 미소로 인사하고 중국 생활 관련 여러 질문도 하는 등 살갑게 굴어 성격이 밝은 직원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직원들의 평가는 판이하게 달랐다. 면담 결과 나는 과장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만큼 여성 과장들은 단호했다.


 공공연히 결혼 전 동거를 하고 성격이 안 맞으면 과감히 이혼하는 문화도 충격적이었다. 혼전 동거는 공개적으로 떠벌릴 일은 아니지만, 창피해할 일도 아니었다. 과장은 아니었지만 직원 중에도 결혼을 생각하고 남자 친구, 여자 친구와 동거를 하는 경우가 몇 있었다. 한국은 결혼식, 신혼여행, 동거, 혼인신고가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면 중국에서는 동거, 결혼증(혼인신고), 결혼식, 신혼여행 과정이 수년에 걸쳐서 나누어 진행된다. 결혼식 전 우선 주택 구입 등을 위해 결혼증을 만들고 신혼여행은 결혼증을 만든 후 1년 안에만 가면 됐다. 결혼식은 그 중간쯤에 했다. 같이 살다가 성격, 조건이 안 맞으면 헤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성격이 안 맞으면 결혼증을 만든 후 이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2018년에는 이혼율이 38%라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높은 비율이다. 그중 여성이 원해서 이혼하는 비율이 73%라고 한다. 이혼 사유 중 생활상 자질구레한 마찰(生活琐事)이 34%로 가장 높았다. 남편이 나흘간 설거지를 하지 않아 이혼을 결심한 경우도 있다. 중국 여자들은 참지 않는다. 화끈하다.


 중국은 한국보다 여성의 사회 참여 비중이 높다. 정부 관료들을 만나도 40대, 50대 초반 여성 간부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간부급 여성 관료라면 짧은 머리, 무채색 중심의 옷 등 내 머릿 속 이미지와는 달랐다. 내가 만난 중국의 여성 관료들은 자유로운 헤어 스타일과 옷차림이었다. 한국 회사에서 보기 어려운 길게 땋은 머리, 롱 치마를 입은 여성 간부가 부하 직원에게 낭랑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남성적이지도 않았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 그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그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많은 사람들이 평등을 주장하는 공산주의 이념, 유교 문화 타파를 주장한 문화 대혁명을 통해 중국의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평가한다.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 대혁명 시기 축첩 제도, 부모의 결혼 강요 등을 봉건적인 악습으로 규정하여 타파하고자 했던 사회 운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모택동의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 받치고 있다'는 말은 유명하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중국은 이날을 부녀절妇女节로 지정하여 여성 직원에게만 반일 유급휴가를 준다. 한국에는 없는 제도이다. 이날 오후에는 많은 백화점에서 세일을 해 여자 직원들끼리 쇼핑을 즐기는 날이기도 하다. 매년 3월 8일 점심시간 전 여성 직원들에게 "위대한 어머니들 감사합니다. 빨리 퇴근하세요"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오후는 몇 안 남은 남자 직원들과 사무실을 지켜야 했다. 중국은 여성 사회 참여 비율이 높고 그에 대해 사회적으로도 많이 인정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중국도 육아에 있어서만큼은 아직도 어머니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크다. 내가 만났던 많은 여성 직원들은 다른 가사는 남편과 상황에 맞게 분담하면서도 육아만큼은 직접 담당했다. 남자들이 반찬을 사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도 했지만 아이를 돌보고 숙제를 도와주는 일은 결국 여성이 담당했다. 모성애를 신격화하고 남성의 육아 면책권을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어떤 나라든 어머니 마음은 같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깨달은 후 나는 회식을 최대한 줄이고, 업무를 되도록 퇴근 전에 마쳐 직원들이 정시 퇴근하도록 배려했다. 육아와 업무 두 부담을 모두 머리에 지고 있는 중국의 워킹망은 고달프다.


 중국 최고위 정치 집단 정치국 상무위원회 7명 중 여성은 한 명도 없다. 여성 대통령이 있는 한국, 대만과 대조적이다. 문화적으로 여성 차별 타파를 외쳤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남성 중심이다. 정부 기관을 보면 50대 초반까지의 중간층 관료들은 여성이 꽤 있지만 55세 이상의 고위 지도층에서 여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모택동은 하늘의 절반을 여성이 떠받치고 있다고 말했지만 아직 중국에서 여성은 한 손으로는 하늘을 나머지 한 손으로는 아이를 들고 있어야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양성 평등은 아직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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